“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 문구는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 구절인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영화 '황산벌'에서 극중 김유신의 명대사다.
최근 국내 바이오 업계 분위기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만난 많은 국내외 업계 관계자들이 최소 올해 상반기까지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 같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그때까지 살아남아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일단 '생존'이 당면한 과제다.
현재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들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기업공개 시장이 위축되고 금리 인상 여파로 투자 유치도 어려워지면서 자금난에 허덕이는 회사가 늘었다. 매출 없이 외부 투자자금으로 수년간 연구개발(R&D)에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자금난은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넘어 생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투자가 위축되고 상장도 요원한 상황에서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라이선스아웃(기술이전), 공동개발 파트너십 같은 사업개발의 중요성이 커졌다. 몸값이 높을 때는 규모가 크지 않아 선호하지 않던 초기 단계의 파트너십이라도 필요하다면 적극 발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건비와 R&D비를 수혈해서 계속 파이프라인 개발에 진도를 낼 수 있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은 파이프라인은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파이프라인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나머지 파이프라인은 소규모 초기 단계의 파트너십 기회를 열어 두라는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시장은 숨죽인 상태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현금 보유액은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예상보다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는 것은 대기업도 그만큼 신중하게 움직인다는 증거다. 초기 단계의 파트너십으로 작은 기회를 만들다 보면 빅딜 기회가 올 수 있다.
잇따른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로 개화기를 맞은 알츠하이머 신약 분야나 표적단백질분해(TPD), 항체·약물접합체(ADC), 메신저리보핵산(mRNA) 같은 새로운 모달리티에서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점은 K-바이오에 대한 관심이 과거보다 확실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 바이오벤처들도 적극적으로 피칭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 투자자의 말이 많은 것을 대변한다.
“앞으로 1~2년 동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합니다. 살아남아야 다시 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작은 기회라도 잘 살려야 할 때입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