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한국 기업을 옥좨 온 미국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가 이달 말께 완전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제한 조치가 무색하게 미국 내 우리 세탁기 점유율이 올라가는 등 실효성에 의문까지 제기되면서 종료 절차를 밟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정부와 이달 말 완료를 목표로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 관련 이해당사국 간 분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협상은 지난해 4월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법리적 다툼이 아닌 이해 당사국 간 원만한 협의를 목표로 한다. 미국 정부의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 연장 여부가 핵심 의제다. 우리 정부는 애초 계획한 이달 중 종료를 집중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8년 2월부터 수입산 세탁기에 관세를 적용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완제품 기준 연간 120만대 이상의 수입 제품에 최대 50% 관세를 적용하는 게 골자다. 2021년까지 3년 시행 후 올해 2월까지 2년 연장됐다. 다만 최대 8년까지 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한 만큼 연장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았지만 연장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2월 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 세이프가드 관련 핵심 쟁점 5개 모두 위법하다며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게 컸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미국 자국 우선주의에 국제기구가 경고음을 보내면서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가 동력을 잃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정부도 WTO 결정에 상소하는 대신 원만한 합의를 위한 이해당사국 간 분쟁 협의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한·미 양국은 이달 중 완전 합의를 목표로 협상을 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조치 연장 명분이 약하다는 점과 함께 재연장 절차를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이달 중 완전 종료 공산을 높이고 있다. 세이프가드 조치 연장을 위해서는 시행 6개월 전 자국 기업의 연장 신청이나 행정부의 직권상정 등이 있어야 하지만 모두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세이프가드 조치 후 삼성전자·LG전자 등 우리 기업은 미국 현지 공장 설립, 혁신 기술 개발 등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며 오히려 미국 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2018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내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월풀에 밀려 10% 후반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기준 20%를 넘어서며 시장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등 자국 보호주의 조치에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세탁기 산업 보호까지 연장하기에는 미국으로선 부담이 크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최종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미국 정부의 추가 조치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추가 연장을 위해서는 사전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시점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년을 끈 세탁기 규제가 종료되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우리 기업의 사업 전략도 다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공장 증설과 생산 확대 등으로 시장 영향력을 기를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