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실버세대는 TV, MZ세대는 OTT' 미디어 양극화 공식이 깨지고 TV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OTT를 서브채널 격으로 취급하던 지상파 TV들이 OTT와 손을 잡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실험이 계속되면서 OTT 중심 미디어 세력 재편이 완성되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부쩍 강조되는 지상파들의 OTT 오리지널 도전,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엔터테인&에서는 지상파 TV들의 OTT 끌어안기와 그 이유, 비전들을 살펴본다.
애초 OTT는 시작 초반만 해도 방송사나 영화 VOD를 볼 수 있는 서브 채널쯤으로 여겨졌다. 지상파 3사와 SKT 옥수수를 결합한 웨이브, tvN 계열 모바일 플랫폼 격으로 시작했던 티빙, 중소플랫폼 격으로 등장한 왓챠 등 토종 OTT는 특히 케이블TV보다 빠른 업로드와 유료회원 중심으로 언제든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하지만 2019년 4월 5G 상용화 시작에 따른 미디어 소비유형 변화와 함께 2020년부터 3년 가까이 지속한 코로나 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영화관이나 TV 등 일정 장소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모바일 중심의 시청환경이 강제 성격에 가깝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2016년 국내 진출한 넷플릭스가 국내 스튜디오들과 협업, 잇달아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우상향 성장을 거듭한 모습을 벤치마킹한 국내 미디어사와 OTT들의 전략변화가 나타났다. 나영석 PD가 2015년 네이버TV로 시작했던 '신서유기' 시리즈 외에는 K팝 한류에 편승해 엔터사들의 자체 예능이나 콘서트 실황 독점으로 단기적인 해법을 찾던 OTT는 2019년 박보검을 주인공으로 한 오리지널 영화 '서복'으로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콘텐츠 배급은 물론 제작 면에서도 OTT 중심 변화체제를 맞이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대응한 것은 케이블이나 종편이다. tvN 등 케이블을 보유한 CJ ENM은 2020년 OTT 플랫폼 티빙의 물적 분할과 함께 이듬해인 2021년 '술꾼도시여자들'과 정종연 PD의 '여고추리반' 시리즈로 OTT 오리지널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또 중앙그룹 산하 SLL은 영화·드라마 제작사 15곳을 레이블로 둔 국내 굴지 스튜디오 조직답게 최근 인기리에 공개 중인 디즈니+ '카지노'를 비롯한 OTT 오리지널을 숱하게 선보이며 가치를 끌어올렸다.
이러한 분위기에 최근 지상파도 탑승했다. 2021년 당시 MBC 소속이던 김태호 PD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먹보와 털보'를 선보여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 MBC 시사교양국 소속 장호기 PD가 제작한 넷플릭스 '피지컬: 100'이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쇼 부문 1위(2월 6~12일 기준)를 거두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최고의 몸을 자부하는 남녀 100명이 상금 3억원을 걸고 승부를 겨룬다는 기획안으로 넷플릭스 100% 제작투자를 이끌어냈다. 누적 시청 4161만 시간 기록과 함께 미국·영국·이집트 등 78개국 톱 10을 달성하는 등 국내 지상파 제작능력과 새로운 글로벌 콘텐츠 활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상파의 OTT 직접 소통은 올해 본격화될 조짐이다. MBC D.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가 제작한 티빙 오리지널 예능 '만찢남'이 최근 공개 중인 가운데 민의식 책임프로듀서(CP)와 이홍희 PD 등 SBS 예능국 사단이 이승기·유연석·이동휘 등과 함께 한 티빙 오리지널 '브로마블(가제)'이 올 상반기 공개를 예고했다. 더불어 '그것이 알고 싶다' 연출 배정훈 SBS PD가 만드는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 '국가수사본부', 현정완 MBC PD의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 시즌2 등 지상파 PD들의 OTT 소통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 '약한영웅 Class1', 왓챠 오리지널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카카오TV '며느라기', 티빙 '술꾼도시여자들' 등 TV 방영과 함께 OTT 중심 스튜디오 체제로 미디어 환경이 재편되고 있다. 제작비나 TV 채널에서 만큼 강한 제약조건 없이 PD들의 창작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서 시청자에 맞는 플랫폼과 콘텐츠 수위 조절의 유연함으로 글로벌을 비롯한 더 많은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OTT 중심의 미디어 변화에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콘텐츠 제작 능력이나 글로벌 파급 면에서는 큰 의의가 있지만 현재 시스템 하 해당 방송사의 존재감보다는 스타 PD 유출과 플랫폼 종속 등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기존 방송국 시스템 폐해를 OTT가 해결해주는 부분이 있다. 방송사들도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건식 KBS 제작기획2부장은 최근 칼럼에서 “방송사 PD는 자체 플랫폼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본의무를 지닌다. 플랫폼 콘텐츠 공급으로 제작 능력을 인정받는 긍정 측면은 있으나 그것이 방송사 존재감보다는 PD 재원의 유출 가속화나 방송사 기획 방향성 자체를 바꾸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조직구성을 스튜디오드래곤이나 SLL 등 스튜디오 법인의 독립화를 우선 추진하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선 전자신문인터넷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