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예술 애호가인 빌 게이츠는 수많은 미술작품의 디지털 복제본을 수집했고, 사들인 디지털 복제물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전시하기도 했다. “당신 회장께서 수집하고 있는 작품들이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란 것을 알고 있나요?” 한 기자의 질문에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장님께서는 진품보다 복제품을 더 선호하십니다.”
#장면2. 화가 장 레옹 제롬의 그림 '우물에서 뛰쳐나오는 진실'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날 '진실'이 '거짓'을 만났다. 거짓은 좋은 날씨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말했다. “물이 정말 깨끗해요. 우리 함께 목욕해요.” 진실은 거짓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물은 정말 깨끗했고, 둘은 함께 옷을 벗고 우물에 들어갔다. 하지만 거짓은 먼저 우물 밖으로 뛰쳐나와 진실의 옷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 우물에서 뛰쳐나온 진실은 거짓을 찾아 헤맸지만 '세상'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진실의 벗은 몸을 감당하지 못해 외면했다. 수치심에 쌓인 진실은 우물 속 깊이 숨어 들어갔고, 훔친 진실의 옷을 입은 거짓은 세상과 함께 돌아다녔다.
'플라톤의 문제'란 “인간이 경험도 못해 본 수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들려준 말소리는 매우 파편적이고 비조직적인 것들임에도 어린아이는 빠르게 모국어를 습득한다. 노엄 촘스키는 언어 습득이라는 '획득' 요소가 '입력' 요소보다 더 크다는 모순을 들어 인간은 태생적으로 '언어습득장치' 또는 '보편문법'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형식언어'는 '특정 규칙에 따라 적절히 구성된 문자열'로, 본디 수학과 정보학의 언어였지만 촘스키는 '형식언어의 생성규칙'과 유사하게 인간의 자연어에도 '생성문법'이 '언어습득장치'에 존재함을 유추했다.
촘스키의 '생성문법'은 떠들썩한 챗GPT '생성 인공지능'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전 촘스키는 챗GPT를 작은 '하이테크 표절기'라고 묘사했다. 적확한 지적이다. 세상은 '진실의 옷을 걸친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을 더 선호한다.
한편 '오웰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인간은 평생 그렇게 많은 경험과 학습을 하고도 어쩌면 그렇게 모를 수 있는가?” 주입된 편견과 팬덤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세상'은 진실의 벗은 몸을 또렷이 바라볼 용기가 없다. 이미 오염된 폐기물로 가득 채워진 '언어습득장치'는 두 눈을 감는다.
챗GPT 성공으로 소환된 '플라톤과 오웰의 문제'는 우리 교육에 필요한 혁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려준다. 현행의 '정해 놓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주입식 교육'은 최악의 교육법이다. 글쓰기와 코딩 교육의 목적은 언어의 생성규칙 습득뿐만 아니라 사고력과 판단력, 상상력과 비평적 검증능력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생각 없는 글쓰기'나 '외운 정답 말하기' 교육은 공장의 효율적 부속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용기 있는 자율적 시민으로 기를 수는 없다. '확장된 플라톤의 문제'는 빠른 언어 습득으로 말로만 그럴싸한 풍월을 읊는 챗GPT의 다음 단계를 말한다. 신비롭게도 인간은 때로 아주 작은 실마리만으로도 매우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 내곤 한다. 교육의 참된 목적은 '오웰의 문제'를 극복하고 '확장된 플라톤의 문제'가 말하듯 저마다의 사고력과 조화로운 판단력, 상상력과 비평적 검증능력의 '선순환'을 북돋는 것이다. 사고·판단·상상·비평·검증은 막아 놓고 학생들 두뇌 속의 부드러운 '언어습득장치'에다 오염된 폐기물 구겨 넣기를 더이상 강요하지 마라.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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