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 이번 주 들어 날씨가 부쩍 따뜻해졌다. 산책로 옆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파르스름하게 돋아난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감돈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는 언제나 계절을 순환한다.
계절은 봄이지만 벤처투자 시장은 여전히 겨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시장의 겨울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신규 벤처투자액은 257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의 1조6406억원 대비 84%나 급감했다. 지난해까지 투자펀드는 사상 최대 규모로 결성됐지만 얼어붙은 시장에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벤처투자 시장 위축은 국내 상황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벤처투자 시장이 급격한 감소세를 보인다. 고금리, 경기, 불안정한 정세까지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벤처투자 시장의 위축은 스타트업 성장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를 바탕으로 성장하는데 추가 투자 유치가 난항을 겪으면서 성장 정체를 겪고 있다. 특히 대규모 투자유치를 노리는 후기 스타트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이미 업계에 일반화됐을 정도다.
투자 위축이 성장 정체로 이어지면서 투자 회수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생겼다.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며 계획한 투자 유치가 차질을 빚고, 주식시장도 침체하자 IPO를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는 컬리와 오아시스가 대표적이다. IPO 일정이 지연되면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 회수도 늦어진다. 회수한 투자자금으로 신규 투자를 이어 가야 하는데 연결 고리가 끊기는 셈이다.
벤처투자 시장 전반에 걸친 문제를 풀 열쇠는 결국 투자 확대다.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녹일 대책이 필요하다.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지금이 바로 정부와 모태펀드가 움직일 때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모태펀드 예산을 약 40% 축소했다. 벤처투자 시장에서 모태펀드 의존도를 줄여 민간 주도로 전환하고, 모태펀드는 투자가 어려운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방향은 맞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하필 세계적으로 투자 감소세가 시작된 시기에 민간 투자 마중물 역할을 할 모태펀드 예산을 줄였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에 왜곡된 신호로 작용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더 얼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1월에 이어 최근 2차 모태펀드 출자를 공고하며 민간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시장에 이제 다시 투자에 나설 때라는 강력하고 확실한 신호를 줄 카드가 필요하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한 모태펀드 출자 예산 확보 등이 카드가 될 수 있다. 모태펀드가 마중물이 돼 민간 투자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스타트업과 벤처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스타트업과 벤처 성장은 새로운 부가가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렇게 기업이 성장하면 모태펀드와 투자한 투자자금은 이익을 더해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자연의 계절은 시간이 지나면 순환한다. 그러나 벤처투자 시장은 시간만 지난다고 순환하지 않는다. 언젠가 변화가 오겠지만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겨울을 서둘러 끝내기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 벤처투자 시장에도 따뜻한 봄이 오길 기대한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