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요즘 이만큼 흔히 쓰이는 용어도 드물다. 영어인 이노베이션은 '갱신' 또는 '변화'란 의미다. 라틴어 '인노바티오'(innovatio)에서 왔다. 어근이 되는 노바레(novare)는 '새로 만들다'란 의미라 한다. 거기다 한자어 '革新'은 무두질에 비유된다. 그러니 이것은 날 것으로부터 용도에 딱 맞는 뭔가로 재창조하는 것인 셈이다.
혁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기회에 대한 의식적이고 의도적 탐색의 결과라는 피터 드러커의 진술도 있다. 그러나 단 하나만 고르라면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원리와 상식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란 드러커의 또 다른 정의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제너럴모터스(GM)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성공원리가 있다. 바로 소득계층시장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는 자동차에 비슷한 취향이 있고, 소득에 따라 어느 범주의 자동차를 구매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으로부터 쉐보레, 폰티악, 올즈모빌, 뷰익, 캐딜락이라는 라인업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GM은 시장 리더가 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일본 자동차가 GM은 물론 디트로이트의 빅3를 압도하게 된다. 승용차 시장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경트럭과 미니밴 판매는 붐을 이룬다.
원래 GM은 경트럭 시장 선두주자였고, 제품 디자인과 품질 면에서 독보적이었다. 여기에 미니밴은 기본 경트럭에서 온 것이었다. 실제 안전표준조차 경트럭에 맞춰 설정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것이 승용차로 사용되지만 GM은 상용차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니 승용차를 기반으로 만들던 전략에서 빠져 있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크라이슬러는 경트럭으로는 닷지 램을 내놓고 미니밴으로는 클라이슬러 브랜드로 타운앤드컨트리, 닷지 브랜드로 캐러밴, 플리머스 브랜드로 보이저를 각각 내놓으며 승승장구한다.
한때 '당연히 그런 거야'가 상식이던 소득계층시장이라는 가정은 GM의 생각을 묶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러나 GM보다 훨씬 빠르게 승용차 시장점유율을 잃어 가던 크라이슬러는 이 같은 시장 변화를 혁신의 새로운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1980년대 250달러에 지나지 않던 크라이슬러의 대당 이윤은 1994년 2100달러까지 뛰어오르고, 빅3 가운데 수익성이 가장 좋은 제조사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공교롭게 이 성공 또한 시한이 있었다. 이렇게 트럭·미니밴·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성공은 얼마 뒤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치솟는 연료 가격으로 판매량이 빠르게 줄고, 2006년에는 14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보면서 차츰 위기로 빠져든다.
어느 기업이나, 특히 성공한 기업이라면 자신만의 비즈니스 논리가 있다. 심지어 오랜 시간 확인된 성공원리기도 하다. 그러나 황금열쇠를 얻었다고 과신하는 그 순간 실속(失速)이 다가오는 사례는 기업사에 허다하다.
GM이나 크라이슬러가 이걸 피할 수 없었다면 누구든 피할 재간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가는 그만큼 자신의 젊음을 다시 찾아내기도 한다. 그것도 1792년에 설립된 기업이 그러하다면 누구든 그렇지 않겠는가.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1971년 세계 최초로 전자 거래 플랫폼을 도입했고, 1993년에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한 최초의 거래소가 됐다. 2018년에 직접상장제를 도입한 곳도 NYSE이다. 200년을 넘긴 이 기업은 그날 스포티파이란 갓 열 살 넘긴 기업을 280억달러짜리로 만들었다. 혁신은 이렇듯 자신이 정하기도 하는 법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