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기업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휴가 못 쓰는 직원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걱정은 기우인 부분이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도 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지난주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15개 중소기업 단체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호소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현행 1주인 연장근로 기간을 최대 연 단위로 확대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유지돼 일시적 업무 증가에 형사처벌 없이 대처하게 해 달라는 목소리를 담았다.
실제로 반도체·배터리 기업을 찾아가면 대기업의 발주 납기를 맞추기 위해 현장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경우가 잦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물량 소화가 버겁다는 하소연도 많이 듣는다. 납기 준수가 곧 기업의 신뢰인데 근로시간 한정으로 일감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다. 이 같은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 연장근로 시간을 좀 더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이번 입장문 발표는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제기되는 근로자들의 우려를 잠재우려는 조치로 보인다. 중소기업 단체장은 연장근로를 위해선 노사 합의, 개별 근로자 동의 등 모두 두 차례의 절차를 거쳐야 함을 강조했다. '강제 연장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관행이 있다면 근절에 앞장서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현장 근로자들은 절차상의 안전장치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강제 야근' 등으로 과로를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근로자가 마주한 현장에서는 절차상의 안전장치가 통하지 않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야근 문제만 해도 경영자 입장에서는 연장근로에 자진해서 동참하는 근로자를 좋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연장근로에 참여하지 않는 근로자는 이로 말미암아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 같은 고민이 반복되면 근로자들은 모두 연장근로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절차상의 안전장치에도 안심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연장근로는 근로자 선택사항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선택에 따른 불이익이 없음도 재확인해야 한다.
현장은 하나인데 바라보는 관점은 판이하다. 경영자와 근로자가 각자 자기 입장에서 바라본 현장만 말하다 보니 근로시간 개편 논의는 평행선을 타기만 한다. “소모적 논쟁보다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절실히 필요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방안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의 안타까움이 깊게 와 닿는 이유다.
이런 때일수록 경영자와 사용자가 마주 앉아서 서로 의견을 나눴으면 한다. 각자 주장이나 입장문 발표를 넘어 직접 대화하는 모습을 곧 목격하길 희망한다.
송윤섭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