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삼성전자와 TSMC가 주도해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위탁생산 시장에 본격 참전한다. 세계 최대 모바일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과 1.8나노 수준 최첨단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애플, 퀄컴 등 주요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이 대부분 미국에 포진한 가운데 인텔 파운드리가 핵심 제조 기지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인텔은 12일(미 현지시간) Arm과 인텔 18A 공정에서 저전력 컴퓨팅 시스템온칩(SoC)을 설계할 수 있도록 협력한다고 밝혔다. 양사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SoC 설계를 시작으로 자동차·사물인터넷(IoT)·데이터센터·항공우주산업까지 범위를 넓혀갈 방침이다. 인텔 18A는 1.8나노 수준 공정으로 내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인텔 오하이오 반도체 공장(팹)에서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력은 인텔 파운드리가 모바일 AP 위탁생산에 본격 가세하는 신호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파운드리 핵심 수요처 중 하나인 모바일 AP, 즉 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저전력·고성능 프로세서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사실상 이 시장을 장악한데다 반도체 IP 역량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IP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 회로 단위(블록)로 칩을 설계할 때 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도 최적화가 필요하다. 인텔은 PC나 서버용 반도체 IP(x86) 강자지만 모바일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Arm의 지원을 받게 된 인텔 파운드리는 모바일 역량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Arm은 모바일 반도체 IP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애플, 퀄컴, 미디어텍 등 스마트폰 AP 강자들은 모두 Arm IP를 활용해 칩을 개발하고 있다. 애플은 Arm IP를 기반으로 노트북과 데스크톱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애플과 퀄컴 같은 반도체 설계 기업 입장에서는 제조를 맡길 선택지가 늘었다. 애플은 주요 AP를 TSMC에서, 퀄컴은 TSMC와 삼성전자에서 양산해왔다. 주문자 입장에서는 TSMC, 삼성에 이어 인텔 가세로 여러 곳에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수 있게 됐다. 쉽게 말해 경쟁을 붙여 단가 인하를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파운드리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시장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 톱10 기업 중 7개가 미국 팹리스인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인프라 및 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어 인텔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TSMC와 삼성도 미국 내 파운드리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 안방에서 인텔과 경쟁해야 한다.
인텔은 “차세대 모바일 SoC를 설계하는 Arm 고객사는 최첨단 인텔 18A 공정 기술은 물론, 미국과 유럽 기반 생산 능력을 보유한 인텔 파운드리의 강력한 제조 역량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