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TBT 대응은 선택 아닌 필수

“솔직히 말해서 현장은 어렵습니다.”

얼마 전 수출 관련 행사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정부가 다양한 수출 지원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요국 사정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즉 한국산 제품을 수입할 '손님'이 줄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각국은 자국산업보호, 친환경 등을 이유로 앞다퉈 기술규제 제·개정을 확대하고 있다. 수입품에 완전히 다른 기술 규정, 표준, 시험인증 절차 등을 요구하는 이른바 무역기술장벽(TBT)이다.

예컨대 특정국이 앞으로 수입 전자제품에 새로운 에너지효율 인증 취득 및 라벨 부착 규제를 적용하고 1개월 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면 수출국들은 일대 혼란에 싸일 수밖에 없다. 규제 이행을 위해 일부 생산설비 가동 중단은 물론 수출을 위해 출고한 물량을 모두 거둬들여야 한다. 인증 취득에 어느 정도 시간과 비용이 투입될지도 미지수다. 예상치 못한 TBT가 기업의 수출 사업을 마비시켜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실제 인도는 지난해 9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요구사항 개정안'을 발표했다. 한국 수출기업들은 그동안 같은 요건의 시험을 여러 번 요구하고 배터리 셀 충·방전 시험 요건이 불명확한 개정안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개정안 기준에 충족하기 위한 설계 변경과 재인증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최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한 한·인도 기술규제 양자 회의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관련 중복시험 폐지와 명확한 시험요건 제시를 끌어냈다. 올해 한국 배터리 업계가 예상하는 인도 수출 실적은 약 7억달러다. 정부가 TBT 한 건을 해소하면서 자칫 허공으로 날릴 뻔한 수출액을 최소 7억달러 지켜냈다.

국표원에 따르면 지난 1~3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새롭게 마련한 TBT는 총 1121건이다. 이는 WTO가 출범한 1995년 이후 역대 1분기 가운데 최대 규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물론 아프리카 대륙 등에서 크게 늘었다. 세계 각국의 TBT가 폭증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길도 험난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수출 확대를 경기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모든 정부 부처의 산업부화'를 모토로 6850억달러라는 수출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러나 TBT 때문에 확보할 수 있는 실적을 놓치게 된다면 아무리 새로운 수출처를 찾는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수출 플러스' 시현에는 수성(守城)책도 필요하다. 주요 수출국의 TBT에 대응할 민·관의 빈틈없는 대비와 적극적 대응이 필수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