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단통법이 도서정가제, 게임 셧다운제와 더불어 대한민국 3대 악법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정도로 단통법의 이미지가 좋지않다는 건 분명하다. 이통사가 모든 이용자에게 일주일 단위로 공시한 대로 일률적인 단말기 지원금을 지급해서 같은 가격에 판매하라고 한 단통법의 핵심은 시장 경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단통법이 그렇게 나쁜 역할만 했을까. 단통법 이후 소비자들은 휴대폰 가격에 대해 일정부분 신뢰를 갖게 됐다. 집앞 매장에서 휴대폰을 믿고 살수 있게 됐다. 단통법 시대에도 온라인이나 신도림 등 몇 군데 ‘성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단통법이 없었던 시절은 어땠나. 휴대폰을 구입하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동통신사가 밀어주는 몇 개 휴대폰은 실제로 몇만원~몇십만원 싸게 구입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가지도 비일비재했다. 38만원짜리 갤럭시 그랜드 효도폰을 노인에게 65만원에 팔았다가 논란이 된 휴대폰 판매점 등이 종종 신문을 장식했다. 그냥 대놓고 악법이라고 딱지만 붙이기에는 단통법 입장에서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단통법은 올해로 제정 10년차를 맞이했다. 좋지 않은 이미지 탓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방식으로든 개정이 도마위에 오를 것 같다. 통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시나리오가 나온다. 여당에서는 올해 중하반기부터 폐지론을 띄운다. 연말 실제 폐지안을 통과시키고, 중요한 경제 성과로 내세운다. 야당도 단통법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정책을 띄워서 주도권 경쟁을 펼칠 수 있다. 단통법 소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그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 여론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좋다. 정당이 표를 의식하는 것을 뭐라 할 수도 없다. 다만, 조금더 깊게 들여다봐야한다. 단통법을 ‘짠’하고 폐지해놨는데, 휴대폰 시장이 과거와 같은 혼란으로 돌아간다면, 휴대폰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면밀하게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해 달라는 이야기다.
단통법 폐지 또는 존치는 수단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보다는 휴대폰 가격 안정화라는 달을 봐야 한다. 통신요금은 정부의 강한 압박 끝에 다양화했고, 저가요금제도 나왔다. 국민 기대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분명히 내린 건 사실이다. 이제 가계통신비의 또다른 구성요소인 단말기로 눈을 돌릴 때다. 휴대폰 시장은 5:3:2 구조의 이동통신시장보다 더 심한 75:25의 과점 체제다. 휴대폰 가격을 낮추는 걸 이통사 보조금에만 의존할 수 없다. 단말기 제조업체도 가격을 내리고, 경쟁을 강화하도록 구조를 고민하는 게 맞다.
휴대폰 시장의 과점체제를 깰 카드는 이통요금 상품 시장에 비해 없어 보인다. 정부가 제4이동통신사처럼 제3휴대폰 기업 진출을 유도할 수도 없다. 그렇다해도 쥐어짜내서라도 고민해야 한다. 단통법의 정식 명칭처럼 정말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조사에 더 다양한 단말기를 저렴하게 판매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단통법은 세계 유일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법이라고 한다. 옛 정보통신부와 방통위는 과거에는 시장이 과열되면 보조금을 규제했다가, 냉각되면 규제를 풀곤했다. 단통법은 유연성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없앨 때 없애더라도, 혹은 존치 시키더라도 단통법 폐지 이후의 시장에 대한 시나리오를 먼저 그려봐야 한다. 논의 과정에서는 과연 단통법이 국민이 체감하는 단말 가격 인하를 가로막고 있는지 분석과 냉정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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