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파운드리, 될성부른 팹리스 스타트업 발굴·협력

美 그로크 등 고객사 확보
대기업 중심서 저변 확대
AI·車 유망기업 동반성장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팹(공장) 건설 현장. (출처:경계현 사장 SNS)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팹(공장) 건설 현장. (출처:경계현 사장 SNS)

삼성전자가 팹리스 스타트업 발굴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축으로 낙점했다. 성장 가능성이 큰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을 조기 발굴하고 협력을 통해 동반 성장한다는 전략이다. 퀄컴·엔비디아·테슬라·지멘스 등 대형 팹리스 중심으로 수주를 추진하던 삼성이 스타트업까지 저변을 확대하는 건 이례다. 될성부른 고객을 먼저 끌어들이는 '저인망식'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로크'를 파운드리 고객사로 확보했다. 그로크는 삼성과 4나노(㎚) 공정에서 협력한다고 16일 발표했다.

그로크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들이 2016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AI 가속기 칩을 개발 중으로, 이를 삼성전자 4나노 파운드리 공정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이 현재 미국에 짓고 있는 테일러 팹(공장)을 이용한다. 2024년 가동이 목표인 팹으로, 고객사가 공식화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파운드리 사업 신호탄인 만큼 의미가 남다른 데, 첫 고객으로 스타트업을 확보한 것이 주목된다.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집중하는 스타트업 고객 발굴·협력 전략이 미국까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그동안 대형 고객사 위주라는 평가가 많았다. 퀄컴이나 엔비디아와 같이 생산량이 많은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기업을 위주로 수주를 진행,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삼성 파운드리를 쓰기 어려웠던 것이다. '진입장벽이 높다'거나 '중소 팹리스·신생 기업은 외면한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최근 삼성 파운드리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을 다수 확보하며 '생태계' 조성에 힘을 싣고 있다. 삼성은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딥엑스, 모빌린트 등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제품을 양산했다. AI 반도체는 초미세 공정으로 제조되는데, 삼성전자가 첨단 공정 쪽에 안정적 수율을 달성한 것이 주효했다.

반도체 설계자산(IP)과 설계자동화(EDA) 툴 기업과의 협업도 스타트업 고객을 뒷받침할 환경을 구축하는데 한 몫했다. 팹리스가 반도체 시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서비스를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MPW 서비스를 내년에 10% 늘리기로 확정했다. 시제품 단계를 통해 잠재적 양산 고객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삼성전자는 해외에서도 스타트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최고경영진까지 앞장서서 미래 고객이 될 해외 팹리스 스타트업 발굴에 뛰어들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은 6월 이스라엘,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4개국을 돌며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에 나선 바 있다.

당시 경 사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 직원들, 스타트업들, 고객들, 협력회사들을 만났다”며 “혁신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많은 혁신 기업들과 장기적 관점으로 다양한 협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장 잠재력을 확보한 스타트업 고객에는 직접 투자도 단행하고 있다. 반도체 스타트업이 성장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핵심 고객이 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전략혁신센터 산하 벤처투자펀드를 통해 이달 초 캐나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에 대규모 투자한 것이 대표적.

텐스토렌트는 중앙처리장치(CPU)계 거장인 짐 켈러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회사로,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이용해 AI 반도체를 제조할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대형 팹리스의 모바일 제품에 집중했던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최근 AI와 자동차(오토모티브)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각 분야 유망 스타트업들을 초기 발굴해 신규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