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시대다. 미국과 중국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상호를 견제하는 무역분쟁을 촉발했다. 최근에는 '기술냉전'까지 확전되는 양상이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는 심각한 위기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로 잠재성장률 저하에도 직면했다. 10년 후 미래 먹거리에 대한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산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 혁신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은 우리 산업의 생산성혁신을 위한 아젠다와 과제를 발굴한 바 있다. 초격차 연구개발(R&D)과 인공지능(AI) 내재화를 통한 '총요소 생산성'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생산성혁신의 지향점이다.
전자신문은 KEIT와 함께 성장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생산성혁신 추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산학연 전문가와 함께 산업 패권경쟁 시대에 우리나라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살펴보고, 위기 타개방안, 첨단산업을 비롯한 산업발전과 육성을 위한 제언을 제시한다.
[참석자(가나다 순)]
△김성동 알엔웨어 최고기술책임자(CTO)
△박영준 아이엠디팜 대표이사
△송병훈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센터장
△여수동 EY한영 상무
△임영목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전략프로젝트 투자관리자(MD)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한종석 KEIT 본부장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성장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생산성 혁신 추진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들 동의하실 것이다. 생산성 혁신 추진방안이 왜 중요한지 전윤종 원장께서 먼저 설명해 달라.
◇전윤종(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우리나라 경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위축되고 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본질적인 총요소 생산성을 올려야 하지 않나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전통적인 성장방법은 노동이나 자본 투입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노동력의 공급은 정체를 넘어 위축됐다. 해외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국내 자본 형성도 정체된 상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투자 기회가 많은데 국내에서 신규 투자를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이나 노동 보다는 생산성 혁신을 통해 고부가 제품·서비스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가격경쟁력을 높여 확실한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견인이 필요하다. KEIT는 생산성혁신을 위해 제품혁신을 위한 '초격차 R&D', 공정·서비스 혁신을 위한 'AI 내재화' 등의 아젠다를 전문가들과 논의하였다. 우리나라의 본질적인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제약됐다. 기반이 취약한데서 고속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수출주도형과 제조업 성장전략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다보니 대기업 등 완성업체는 경쟁력이 있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소재·부품 등 중소·중견기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혁신도 정체되면서 산업 밸류체인 전반의 생산성이 위축되지 않았나. 초격차 기술이 없이 혁신 시장을 만들기는 힘들다.
◇사회=생산성을 말하면서 원장께서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러면서 생산성을 높여온 것 아닌가 싶다. 기업인이 현장에서 보시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나?
◇김성동(알엔웨어 최고기술책임자(CTO))=소규모 기업에 있다 보니 항상 연구인력이 부족하다. 알엔웨어는 회의실 솔루션을 만들어 수출을 많이 했는데 코로나가 닥쳐 판로가 막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기술을 활용해 무선영상전송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활용해 지방정부와 플랫폼을 만들어 하고 싶었다. 한건, 한건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데 플랫폼 형식으로 요구가 들어오면 대응하기가 어렵다.
◇사회=제품혁신은 왜 생산성 혁신의 핵심 추진과제로 도출됐나?
◇임영목(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전략프로젝트 투자관리자(MD))=기술력 기반으로 누구든지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것, 이를 기반으로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만들겠다 하는 것을 제품혁신이라고 표현했다.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기는 독점이다. ASML이 지금은 기업 규모가 커졌지만 처음부터 대기업으로 출발한 곳은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하는데 있어 대기업 역할이 많지만, 대기업 집중으로 크다보니 중간 허리가 빈 부분이 있다. 대기업의 허리와 다리가 되는 중소기업 역량이 쫓아가지 못하고 대기업만 빨리 뛰어갔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전윤종 원장=우리가 앞서있는 분야에서 격차를 더 벌리는 '선도형 초격차', 현재 기술력은 약하지만 미래 신산업 창출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도전형 초격차' R&D에 집중해야 제품혁신이 가능하다.
◇사회=박영준 대표께서는 업체를 운영하면서 생산성 혁신을 위해 어떤 것이 중점 사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박영준(아이엠디팜 대표이사)=우리 회사는 첨단 바이오 기업이다. 초격차 부분이 반도체나 소재 부분은 격차를 벌리는 단계라면, 첨단 바이오는 격차를 좁혀가는 단계다. 첨단 바이오는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좁히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격차를 줄이는데 핵심은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제조와 생산 경쟁력이 기본이다. 보이지 않는 '노하우'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초격차 생산성은 제조를 기존에 있는 일반적인 제조방법보다는 디지털 전환을 반영해야 한다.
◇사회=제품혁신 분야에서 '글로벌 톱 프로젝트'는 이제 설계가 됐다. 그렇다면 사업화와 글로벌 공동연구는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한종석(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본부장)=앞서 '선도형 초격차'와 '도전형 초격차'를 얘기했다. 선도형 초격차는 우리 입장에서 글로벌 공동연구의 유인이 낮다. 도전형 초격차는 우리가 기술격차를 줄이면서 기회를 잡기 위해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도 절감해야 한다. 당연히 우리보다 기술이 앞선 선진국과 협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협력은 어렵지만 우리는 제조능력이 선진국보다 어쨌든 뛰어나다. 선진국은 설계능력은 뛰어난데 자기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구현하고픈 수요가 강하다. 그러면서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고, 새 시장을 같이 찾아나가면서 그 시장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전윤종 원장=글로벌 밸류체인 재편 과정에서 첨단산업과 기술에서 신뢰할 협력 파트너를 찾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게 한국 기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제조역량이 뛰어나고, 제품을 만드는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과 유럽의 많은 연구기관과 기업, 특히 '스케일 업(Scale up)' 하는 곳을 찾고 있다.
◇사회=공정혁신과 서비스혁신 쪽으로 넘어가겠다. 산업 데이터 기반 AI와 공급망이 왜 중요해졌나?
◇송병훈(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센터장)=제조 산업의 생산성 혁신을 위해서는 인공지능(AI)이 필수요소라는 점은 이미 다 공감하고 있다. 최근 AI 기술은 과거보다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제조 AI 기술을 활용해 생산하는 과정, 제품 개발 과정까지는 많이들 보고 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다른 스케일 업도 할 수 있냐가 쟁점이다.
◇사회=제품혁신과 공정혁신에 대해서 얘기했다.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제일 화두로 느끼고 있나?
◇송병훈=서비스혁신 관련해서도 굉장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민간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민간 데이터를 쉽게 모으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해외 사례도 봤다. 해외에서는 이것을 한 단계 업 시켜서 민간 데이터를 공유, 활용하는 개방형 서비스 기업이 늘어나더라. 안 좋은 것보다 순기능이 많다. 민간 데이터를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 육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료, 관광, 환경, 엔터 등 다양한 데이터를 연계하고 융합해 신산업 창출이 가능한 '개방형 통합 데이터 플랫폼'의 구축도 필요하다. 민간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도 최소화해야 한다.
◇사회=우리나라의 산업 데이터 기반 AI 혁신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인가?
◇전윤종 원장=우리가 활용하는 것은 잘한다. 생성형 AI의 경우 가장 앞서 나가는 분야를 보면 네이버도 하고 통신사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갭(Gap)'이 느껴진다. 생성형 AI를 통해 정보를 문의하면 회사나 개인 입장에서는 정보가 공유되면서 보호해야 할 정보가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 공유가 중요하니 AI에서도 암호화 된, 개별적으로 특화된 AI가 나와야 한다.
◇임영목=AI는 데이터가 없으면 생겨날 수 없다. 피부로 느끼는 규제나 두려움은 법적인 해결에 갭이 있다. 법은 상세하게 모든 경우를 적어 두지는 않고 큰 방향성만 제시한다. 실제 경험한 사례는 없으니 현장에서는 고민이 많다. 규제라는 측면에서는 데이터 유통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 생성형 AI뿐만 아니라 생산성 혁신에서는 조금 더 낮은 단계의 AI도 촘촘히 들여다봐야 한다.
◇박영준=AI 성능은 데이터 기반 학습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데이터의 정확도와 질에 따라 정보가 달라진다. 산업에서 공유하는 데이터를 자기가 가진 '노하우' 부분의 질 좋은 데이터와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즉 산업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다.
◇사회=생산성 혁신을 위한 제품, 공정, 서비스 혁신 주제별로 살펴봤다. 생산성 혁신을 위해 꼭 필요한 제언을 해달라.
◇여수동(EY한영 상무)=예전에는 국가나 정부 기관이 주도해서 정책을 만들고, 민간이 따라오기도 하면서 큰 성취를 거뒀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 민간에서 치열하게 나온 아이디어들이 펼쳐지면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진다. 애매할 수 있지만 데이터가 억지로 만들어지고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다. 정부는 민간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김성동=데이터를 활용한 공정이나 서비스 활성화는 의미가 있다. 예전 산업 시대처럼 돈을 투자해서 만들어내기보다는 투자된 것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가치 있다. 데이터를 단순히 이용하는 레벨을 넘어 새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부가가치를 높여서 생산성을 향상하는 '퀀텀 점프'가 필요하다. 그래야 매출도 늘고 고급인력도 수용할 수 있다.
◇박영준=예전에는 생산성 하면 하드웨어 측면만 강조했다. 얼마나 많은 장비를 구축할 것인가가 하드웨어인데, 지금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데이터를 활용해서 이를 어떻게 최적화 할 것인가, 기존과 비교해 얼마나 경쟁력을 가져갈 것인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송병훈=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생산부터 서비스까지 하려면 장비 전문가도 있어야 하지만 데이터와 AI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산업도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전윤종 원장=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효율적이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빅데이터 플랫폼, 고생산성 산업구조로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정부 R&D 시스템 개선을 통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대체불가 초격차 제품 개발, 경쟁력 있는 산업생태계로 전환하여 산업의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