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표준'이 국내 산업계에 혁신적인 신시장을 창출하는 핵심가치로 떠올랐다. 국내 최고 연구진이 장기간 노력을 들여 개발한 데이터를 국가공인 데이터인 참조표준이 다양한 산업과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표준은 특정 분야에서 측정한 데이터·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평가해 공인한 형태다. 국가나 사회의 모든 분야에 널리 지속적으로 사용하거나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다.
국표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부터 고품질 표준 데이터를 만들기 시작하고, 이를 '참조표준'이라고 명명했다”면서 “정부가 공인하는 데이터인 참조표준은 무엇보다 정확도와 신뢰도가 보장되기 때문에 믿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조표준='굿데이터'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7일 서울 잠실 스카이31 컨벤션에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국가참조표준센터(NCSRD), 한국표준협회(KSA)와 함께 '2023 참조표준 성과공유회'를 개최했다. 참조표준 개발과 확산을 위해 주력한 주체들이 한 데 모여 그동안의 개발·활용 성과를 공유하는 한편 제도개선, 의견수렴 등을 통한 발전방안 및 향후 사업추진 방향 논의했다.
오광해 국표원 표준정책국장은 “참조표준은 그동안 다양한 산업과 국가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했다”면서 “스타트업 창업과 중소·중견기업 사업화에서도 조금씩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참조표준은 지난해 기준으로 누적 6만6000건 이상을 개발했다. 올해까지 총 7만2000여건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참조표준 개발을 주도하는 데이터센터는 올해 대기측정, 만성질환 라이프로그, 나노물질 안전성, 금속 용접부 비파괴 검사 등 5개를 신규로 지정했다. 2007년 1호 지정 이후 현재 64호 지정을 앞두고 있다.
참조표준을 보급하는 국가참조표준 통합 플랫폼 접속 건수는 지난 2016년 24만여건, 2019년 36만여건, 2022년 59만건에서 2023년 10월 기준 67만건으로 훌쩍 늘었다.
참조표준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은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데이터를 찾는 기업·기관이 늘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주목받는 디지털전환(DX), 시대를 이끄는 첨단기술인 인공지능(AI),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축 등이 모두 고품질 데이터를 저변에 두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Garbage in, garbage out(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면서 “아무리 많은 데이터가 있어도 가치가 없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많은 곳이 빅데이터와 함께 굿데이터(Good data)를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 혁신 싹 틔운다
참조표준은 국내 기업의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면서 신시장 개척을 가속하는 페달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이 개발한 솔루션·서비스에 결합하면서 정확성·신뢰성을 부여한다.
통합 엔지니어링 솔루션 전문업체 경원테크는 지난 2013년 반도체 플라스마 공정진단 소프트웨어(SW) 'K-SPEED'를 상용화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공정인 식각·증착 공정의 물리화학적 현상을 고려해 공정변수에 따른 영향을 사전에 예측하는 솔루션이다.
경원테크는 해당 SW에서 D램·낸드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 공정을 해석하기 위해 '플라스마물성 참조표준'을 활용했다. 플라스마를 구성하는 전자, 이온, 원자, 분자 등의 물성을 공인한 값이다. 지난 2006년 플라스마물성 데이터센터로 지정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참조표준으로 등록했다. K-SPEED는 출시 이후 경원테크 총매출의 약 30%를 책임지고 있다.
엘에스디지탈(LSD)은 재료물성 데이터베이스(DB)와 제품수요공급망 분석 서비스를 전문으로 제공하는 기업이다. 자체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활용해 고객에 적합한 최상의 재료 데이터를 제공한다. 특히 '참조표준'을 활용해 데이터 품질을 높이면서 순항하고 있다.
참조표준을 접목한 LSD의 데이터베이스 사업 매출은 전체 매출 가운데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LSD는 국내 7개 데이터센터와 협업해 참조표준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가공하고 있다.
참조표준은 국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성인이 주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에서 얻어진 값도 여러 과정을 거쳐 건강지수 참조표준으로 제정되고 있다.
뇌혈관 질환 인공지능 의료분석 솔루션 전문업체 제이엘케이는 일찍부터 한국인 뇌 자기공명(MR) 참조표준 가치에 주목, 관련 기술에 대한 이전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후 자체 개발한 솔루션은 최초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 2019년에는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올해 참조표준 성과공유회에서도 다양한 우수 참조표준 사례가 발표됐다.
고주연 한국인 균형능력 데이터센터장은 '균형능력 참조표준'을 소개했다. 균형능력은 일상적으로 신체건강을 판단하는 중요지표다. 하지만 그동안 객관적·정량적 데이터가 없어 관련 기관·기업 등이 불편을 겪었다.
센터는 올해 균형능력과 관련한 참조표준 127종을 개발했다. 앞으로 측정장비, 가상현실(VR) 재활 프로그램, 임상질환 지표 등 연구개발(R&D), 모니터링 기반 질병 조기 발견 등 공공·사회 분야에서 활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KRISS은 '재료-세라믹재료의 전기적 특성' 참조표준을 활용해 집속초음파 장비 'DEBREX'를 개발했다. 계면활성제 없이 물과 기름을 섞을 수 있다. 해당 장비는 제조현장(화장품, 제약, 페인트)과 수처리(유화, 염료, 독성물질), 물질 추출 등에 투입할 수 있다. 해당 기술은 집속형 초음파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R&D 중심 솔루션 전문업체 퍼스트랩에 이전한다.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