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잉, 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진복을 입은 뒤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선 센터 내부는 기계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20개의 베이(Bay·구역)로 구성된 공간에는 성인 키보다 1.5배 이상 큰 반도체 장비들이 들어섰고 수백장의 웨이퍼와 반도체 칩도 즐비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 램리서치가 미국 이외 지역에 처음 구축한 연구개발(R&D) 거점 '한국테크놀로지센터(KTC)' 내부 모습은 웅장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협력하며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는 핵심 기지로 위상이 엿보였다.
3만㎡ 규모의 KTC는 용인 지곡동에 위치해있다. 삼성전자 용인 첨단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입지 부근이다. K반도체 벨트 중심부에 자리한 셈이다.
KTC는 고객과 긴밀한 협업을 지향하는 글로벌 랩(Lab) 전략 일환으로 탄생했다. 고객사 가깝게 R&D 시설을 갖춰 차세대 반도체 공정·솔루션 개발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7월 착공했으며 지난해 4월 개소했다.
정성락 램리서치코리아 부사장은 “KTC 설립 전에는 2~3주 걸렸던 웨이퍼 테스트를 하루 만에도 완료할 수 있다”며 “KTC 테스트 속도는 미국 R&D 센터와 비교해도 1.5~2배 정도 빠르다”고 설명했다.
KTC에는 센스아이·키요 등 램리서치 최첨단 장비는 물론, 현재 개발 중인 미양산 장비도 테스트용으로 마련돼 있다. 내년에 공개될 최신 장비 역시 KTC에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
램리서치가 KTC를 마련한 이유는 한국이 핵심 시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시안공장·SK하이닉스 우시공장을 제외하고도 램리서치 전체 매출의 20%가 한국에서 발생한다.
이상원 램리서치코리아 총괄대표는 “한국은 세계 D램 시장의 75%, 낸드플래시 시장의 55%를 차지하고 있다”며 “미래를 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큰 고객(삼성전자·SK하이닉스)이 둘이나 있어 2나노·3나노 공정을 비롯해 300단·400단·500단 적층 등을 협력해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한국은 첨단 반도체 식각·증착장비를 생산하는 중요 생산기지다. 일부 장비(센스아이: 스스로 데이터 수집·분석하는 식각장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을 한국서 생산하고 있으며, 30~40%는 해외 수출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국내 공장 가동 11년만에 1만호기 생산을 돌파하기도 했다.
램리서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투자를 더 강화할 채비다. 용인 지곡동 KTC 앞에는 대형 크레인이 들어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내년 7월 성남 판교 소재 한국본사와 화성 동탄에 위치한 국내 장비 교육을 담당하는 로컬트레이닝센터(KLTC) 모두 KTC 앞 신축 건물로 이전할 예정이다.
경기도 오산·용인·화성에 위치한 공장도 지속 투자해 국내 반도체 생태계와 공급망 내 핵심 장비사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생산능력은 18배, 장비 제품 다양성은 11배 증가했다.
이체수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 사장은 “한국은 본사에서도 인정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장”이라며 “2021년 화성 공장 증설로 국내 생산능력(CAPA)이 두 배 증가하는 등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원 대표는 “램리서치가 국내 반도체 장비회사 중 가장 많은 투자와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용인(경기)=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