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가 난데 없는 혐오몰이의 희생양이 됐다. 공들여 만든 게임을 한 순간에 이용자로부터 외면받게 하는 사실상 '테러행위'의 피해자 임에도 도리어 가해자로 몰리고 있다. 게임 홍보 영상 속 음습하게 숨겨진 혐오와 조롱 표현에 상처 입은 대다수 게임 이용자는 '집단적 착각'에 빠진 '악성 민원인'으로 매도 당하는 처지다.
'집게 손'으로 상징되는 이번 사안의 본질은 원청사로부터 홍보영상 제작을 발주받은 하청사가 원청 의사와 무관하게 결함이 섞인 상품을 납품했다는 사실이다. 하청을 맡은 외주업체 직원은 개인 SNS에 혐오사상을 드러냈다. 이후 해당 직원이 게임사 넥슨 작업물에 참여했다는 것을 공개하면서 많은 게임 이용자 불만을 야기했다.
문제가 된 직원의 성별, 나이 등은 이번 사안과 전혀 무관하다. 원청인 게임사 입장에서는 외주업체 직원의 성별, 나이, 이력 등 개인신상을 전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일각에서 '40대 남성 작업자'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면서 혐오 표현이 맞는지에 대한 논쟁을 시도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의도적으로 남성 여성 대립 구도를 만들어 논점을 흐리려는 시도가 아닌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원청이 검수 단계에서는 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영상에 혐오표현이 담겨 있다고 대중이 인지하게 된 시점은 개인 SNS에 혐오 사상에 동조하는 게시글을 올린 외주업체 직원이 영상 제작에 참여했음을 공개한 순간부터다.
논란이 터지고 수많은 게임사 임직원이 주말 새벽부터 회사로 출근해 밤샘 검수 작업을 연일 진행하고 있다. 당초 문제가 된 홍보 영상 이외에도 게임 콘텐츠와 리소스 곳곳에서 부적절한 표현이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는 추세다. 게임 서비스를 정상화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성별 갈등으로 퇴색시키고 상처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흉악 범죄를 부추기는 '총·칼 살인 게임'이라는 주장이 펼쳐진게 불과 넉달 전이다. 게임에 성별 혐오 프레임을 씌우려는 집게 손 논란은 그 시즌2 성격이 짙다.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시선은 과거에 비해 훨씬 성숙해졌다. 이해도 역시 깊어졌다. 타인에 대한 혐오를 '은근슬쩍 스리슬쩍' 숨겨 놓는 행위는 게임 생태계에서 자리잡을 수 없다.
게임을 향해 진정 혐오몰이를 하는 것은 누구인가. '인셀남(여성과 연애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남성)'이라는 혐오 표현을 거침없이 남발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특정 세력인가. 좋아하는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길 바라며 어린이 병원 기부 릴레이로 맞서는 게이머들인가. 소모적인 논란을 뒤로하고 게임 산업이 보다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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