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계와 연구기관이 지능형 반도체 장비 구현에 시동을 걸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처리, 생산성을 끌어 올릴 '플랫폼'을 개발한다. 반도체 장비를 AI로 전환할 기술로, 해외 선도 기업 대비 뒤처진 AI 반도체 장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은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과 '반도체 장비 지능화 플랫폼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반도체 장비 데이터를 수집·처리·분석해 공정에 최적화할 수 있는 솔루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장비 플랫폼 기업 서플러스글로벌과 증착장비 업체 바코솔루션이 참여하고 있으며 2026년 플랫폼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반도체 업계는 주요 제조 공정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SML·램리서치·도쿄일렉트론(TEL)·KLA 등 세계적 장비사들의 특허 출원이 늘고 있고, 각종 센서와 AI 솔루션을 적용한 신제품을 잇단 출시하고 있다.
AI 활용은 반도체 제조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일례로 AI로 웨이퍼 손실과 결함을 파악하면 공정을 최적화하는데 유용하다.
그러나 국내 장비사는 AI 기술 활용에 있어 후발주자다. 특허 출원도 적고 아직 연구개발 수준에 머물러 격차가 크다는 평가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특허를 분석한 결과 해외 상위 10개사의 AI 반도체 장비 출원 건수는 총 269건인 반면에 국내는 11건에 그쳤다.
반도체 장비 지능화 플랫폼은 해외 AI 반도체 장비를 추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우선 증착 장비 공정 데이터를 확보, 반도체 장비 성능을 극대화할 최적화 AI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로 했다.
증착 장비는 여러 반도체 공정 가운데 그나마 국산화 진척이 빠른 분야다. 강정훈 전자기술연구원 센터장은 “증착 공정의 24시간 데이터를 토대로 반도체 장비 분석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장비의 AI 전환을 위한 공정 데이터 통합 관리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장비 이상 상태를 감지하고 원인 분석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SW) 기술로 가상 운전 및 원격 가시화 서비스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플랫폼은 서플러스글로벌의 원자층증착장비(ALD)와 바코솔루션의 물리적기상증착(PVD) 장비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공정 데이터 규격을 표준화해 범용 반도체 장비에서 쓸 수 있는 플랫폼 형태로 고도화할 방침이다. 반도체 장비 제조사(브랜드)에 제한을 받지 않는 AI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초기에는 데이터 분석 및 처리를 클라우드에서 운용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반도체 공정이 이뤄지는 양산 라인(팹)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공정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될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복안이다. 향후 반도체 제조사가 시스템을 직접 관리하는 '온 프레미스 컴퓨팅'형 플랫폼으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강 센터장은 “지능형 반도체 장비 구현으로 공정 안정성을 향상하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증착 외 웨이퍼·산화·노광·식각·테스트·패키징 등 다른 공정과 타 산업 분야에서 확대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구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