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JY, 사법 리스크 한숨 돌려…'뉴 삼성' 투자·M&A 힘 실릴 듯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
법원, 피고인 13명 증거 부족 등 무죄
지난해 28.3조 사상 최대 R&D 투자
제한적 환경 속에서도 위기 돌파 힘써
3월 정기주총 등기 이사 복귀 청신호
경제단체 “경제 발전 매진” 기대 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주요 일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주요 일지

법원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 과정에서 각종 위법이 발생했다는 검찰 기소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5일 1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다수 핵심 기소사안에 대해 모두 '증거 부족' 혹은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

삼성은 모든 혐의에 대해 이재용 회장 등 관련 핵심 임원들이 집행유예가 아닌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오랫동안 지속된 사법 리스크에서 상당부분 탈피할 수 있게 됐다.

1심 판결에 따라 삼성그룹의 사법 리스크는 다소 해소되겠지만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완전히 리스크가 사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는 초반부에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 압수수색과 휴대폰 등 저장매체에 대한 증거확보 과정에서 사건 관련 주요 정보만 취득하고 범죄 혐의 사실과 무관한 데이터의 인위적 복제를 막는 적절한 조취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에 따라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취득한 증거들은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면서 유죄를 판단할 증거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검찰 항소에 상당 부분 제약이 생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검찰이 항소하면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완전하게 사법 리스크가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판결 후 법정을 나서는 이재용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8년째 주춤한 미래 투자…'재도약' 기대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사건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4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사건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4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으로 삼성은 사법 리스크에 직면했었다.

특히 이 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미래 준비를 위한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전략적 경영에 상대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웠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사법 리스크 해소에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삼성이 경영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중소 규모 인수합병을 비롯해 인공지능(AI), 헬스케어, 핀테크, 로봇 등에 걸쳐 최근 3년간 260여개 벤처에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 전체의 큰 방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만한 초대형 인수합병은 2017년 이후 사실상 멈췄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삼성은 2017년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후 미래 먹거리를 획기적으로 확보할만한 전략적 투자나 인수합병 사례를 만들지 못했다.

시장은 삼성이 생성형·온디바이스 AI, 차세대 통신·반도체 기술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한 선제적 투자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확실한 초격차로 압도적 1위를 달성한다'는 삼성의 성장 비전이 핵심 사업군에서 모두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도체는 인텔에 글로벌 1위를 내줬고 스마트폰은 애플에 더해 중국에서는 화웨이에 밀리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와 TV는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춘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경기도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경기도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은 중대 사법 리스크를 겪는 제한적인 경영 환경 속에서도 위기 돌파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차세대 기술 확보, 글로벌 영향력 확대, 인재 육성 등에 힘을 쏟아왔다. 협력사, 지역사회와의 동행 등에도 힘을 실으며 변화를 꾀했다.

반도체와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대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 업황 부진과 실적 악화로 15년 만에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밑돌았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집행했다.

지난해 연간 연구개발에 28조3400억원을 투자해 연간 영업이익의 4배 넘는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는 기존 최대였던 2022년(24조9200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이재용 회장 구속에 따른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회장이 사실상 총수 대행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특성상 업황과 실적이 최악인 상황에서 최소 10년 이상 앞을 내다보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은 임기 내 성과를 중심으로 판단하지 미래 10년~20년을 내다보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불황에도 대규모 투자나 전략적 인수합병을 하고 인재 육성에 투자하는 것은 오너십 경영 체계에서나 가능한 일이기에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떡볶이, 만두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떡볶이, 만두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1심 판결에 따라 이재용 회장이 다시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복귀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임기가 만료돼 미등기임원으로 남아있다. 아직 검찰의 항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가 판결된 만큼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등기임원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어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만한 전략적 투자를 최종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영을 하려면 등기임원 복귀가 필요하다.

◇경제단체들도 '환영'

이번 1심 판결에 대해 경제단체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삼성이 다시 경영과 투자에서 광폭 행보를 단행해 전체 국가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과 오해가 해소돼 다행”이라면서 “삼성그룹이 그동안 사법 리스크로 인한 경영상 불확실성을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면서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과 이제 막 회복세에 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