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의 진화와 합종연횡을 거친 통신 시장은 그야말로 경쟁 실천의 장이다. KT에서 분사된 데이터 전담 데이콤과 차량 전화 한국이동통신은 경쟁사인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전신이다. 전국 전화선 설치가 지상과제였던 KT의 음성(시내·외, 국제) 시장에는 데이콤·온세와 별정통신이 진입해 경쟁을 촉발했다. 이동통신 시장에는 신세기통신과 PCS 3사의 연이은 진입으로 5사 각축전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전에 등장한 수신 전용 삐삐는 재미를 봤지만, 발신 전용 시티폰은 사라졌다. 이 같은 경쟁 시장 구축은 정부의 국내 통신 시장 개방 압력에 대비한 '선 경쟁 후 개방' 정책에서 기인한다.
통신 패러다임은 음성은 무선으로, 유선은 초고속 인터넷으로 옮겨 갔다. 정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정보고속도로 구축 경쟁에 뒤질세라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막상 KT가 독점해 온 전화선 인터넷 시장에 경쟁의 불씨를 지핀 것은 파워콤·M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망을 이용한 두루넷·하나로(현 SK브로드밴드)의 출현이었고 가입자는 수년 내 천만을 넘어섰다. 초고속은 A·V-DSL을 거쳐 광케이블로 진화했고 VoIP(인터넷 전화)·IPTV(인터넷 프로토콜)의 음성·미디어 융합이 촉진됐다. 무선이 만족스러운 용량·속도에 달한 것은 3G와 와이파이 등을 거친 후 4G의 '음성 중심 종량제'에서 '데이터 중심 정액제'로 전환하고 나서였다.
2000년대 경제 상황 악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시장은 재편되었다. SK·신세기통신과 KT·KTF, 데이콤·파워콤과 하나로·두루넷 합병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비대칭 규제로 선회했고 유효경쟁정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종합포털이 급성장했고 스마트폰·앱스토어의 등장, 서비스·단말 분리 제도(USIM 분리·단통법)의 시행으로 통신사의 생태계 장악력은 약화했다. 2000년대 후반은 도매 재판매인 알뜰폰과 제4 이통사의 도입 노력과 같은 경쟁촉진책이 이루어졌고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KT의 스카이라이프와 SK텔레콤의 S(위성)-DMB 제공 TU 미디어의 방송 진출이 이루어졌다. 후반에 탄생한 유무선·방송을 아우르는 3강 종합통신사는 IPTV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KT·SK텔레콤에 결합판매가 허용되면서 통신사와 MSO 간 교차 경쟁은 날로 거세졌다. 2010년대 후반부터 통신사가 MSO를 합병하면서 구조 재편은 일단락됐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사업자는 흡수되거나 사업을 접으면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통신 시장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어벤져스처럼 이들 모두가 등장하는 광고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대신 족보를 그려보며 그때를 추억해 본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