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유통시장이 50만원 전환지원금 이슈로 뜨겁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 방침을 밝혔다. 폐지 전이라도 지원금을 확대할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의 번호이동 50만원 전환지원금 지급을 위한 단통법 시행령과 고시 개정이 전광석화 같이 진행됐다. 1개월여 만에 시행령과 고시 개정안을 연속으로 마련하고 관보 게재까지 마쳤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출입하며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기억이 남는다.
복수의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신규 상품 출시를 위한 전산 준비에는 고객서비스 응대를 위한 데이터 연결, 결합상품 연결 등 준비 기간만 3개월이 필요하다”며 “전산 준비에 난색을 표하자 정부는 우선 수기로라도 전환지원금 지급 대상을 모집하라고 요청했다”고 귀뜸했다.
너무 급했던 건 사실이다. 민감한 고시·시행령 과정에서 구성하는 연구반, 공청회도 없었다. 알뜰폰은 고시 행정예고를 접하고서야 정부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동통신사가 과도한 지원금을 투입할 경우 시장경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서울YMCA도 무리한 추진이라며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과도한 속도전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정부는 전환지원금 제도가 '과도기'라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단통법 폐지가 국회 논의에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우선 단통법 폐지에 상응하는 대책을 찾았다. 번호이동 지원금차별에 대한 예외조항을 만들고, 50만원을 기준으로 설정했다. 대통령의 추상같은 지시가 있었고, 국민 편익을 고려해 현행 법제도 틀 내에서 속도감 있게 이행하려 한 것에 대해 비판만 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고시는 시행됐다. 전환지원금 제도 시행 첫날인 16일 이통사들은 단말·요금제별 최대 13만원 가량을 공시했다. 그럼에도 통신 시장 혼선은 여전하다. 아직 전환지원금을 모르는 이용자도 많다. 방통위는 이통사들과 협의해 제도 이행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혼선을 피하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통위는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검토해야 한다. 단통법 폐지 이후 어떤 통신 시장을 그려갈 것인지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일반 유통시장은 온라인 중심으로 전면 재편되며, 쿠팡·알리·테무에게 시장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휴대폰 시장에서도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이 바람직한지, 오프라인 중심의 현 체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통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필요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동안 단말기 완전자급제, 부분 자급제 등 수많은 유통시장 개선 논의가 있었다. 이제라도 통신 유통 생태계 의견을 모을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연구반, 태스크포스(TF), 협의체건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급하게 먹는 음식은 체하기 마련이다. 우선은 개정된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되, 무조건적인 속도전보다는 장기적인 이동통신 유통시장 변화를 염두에 두고 준비가 필요하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
박지성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