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반도체 제조 장비 3대 중 1대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 첨단 반도체 장비 공급을 가로막는데도 장비 도입을 크게 늘려 주목된다.
SEMI(옛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중국 반도체 장비 구매액은 366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세계 반도체 장비 구매 총액은 1062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는데, 이 중 3분의 1 이상인 34.4%를 중국이 차지한 것이다.
장비 구매는 반도체 공장(팹)이 다수 포진한 한국·중국·대만이 전체 72%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그러나 작년 반도체 경기 악화로 한국과 대만 반도체 장비 구매는 전년 대비 모두 감소했다. 한국은 7% 감소한 199억4000만달러, 대만은 27% 감소한 196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은 반도체 장비 구매가 늘었다. 전년 대비 29% 증가, 주요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자국 내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대하려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미국(15% 증가)과 견줘서도 높다.
이같은 통계는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꾸준히 설비를 늘렸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14나노미터(㎚) 이하 시스템 반도체, 18㎚ 이하 D램 등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도록 관련 기술 및 장비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일본 등 동맹국도 이같은 수출 규제에 동참, 첨단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의 중국 반입이 사실상 가로막힌 상태다.
이에 중국은 초미세 공정이 필요하지 않은 범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반도체 경기 침체 동안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SML·도쿄일렉트론(TEL)·램리서치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의 중국 매출 비중은 확대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범용 반도체를 위한 장비를 사재기하듯 대거 구매한 결과”라며 “한국과 대만 설비 투자가 줄어든 것도 주요 장비사들의 중국 매출 비중 증가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대규모 반도체 장비 투자에 미국은 새로운 규제를 준비 중이다. 범용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과의 협력을 추진 중이다. 미국의 규제 범위가 확대될 경우, 영향은 우리나라에도 번질 수 있다.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추가 수출 규제를 단행할 경우 단기적으로 중국의 장비 구매에 차질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중국 내부에서도 이를 인지해 주요 장비를 국산화하려고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