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가 합병을 추진한다. 엔비디아·AMD·인텔 등 거대 기술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 마련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으로, 최종 성사되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국내 AI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이 탄생한다.
리벨리온과 SK텔레콤은 리벨리온-사피온코리아 합병을 추진한다고 12일 밝혔다. 실사와 주주동의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3분기 내 본계약을 체결하고 연내 통합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사피온코리아는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스퀘어가 출자한 미국법인 사피온의 100% 자회사다.
사피온은 통합법인이 SK그룹 계열사에 편입되지 않는 수준(30% 미만)의 지분만 확보해 전략적 투자자로 남고, 통합법인 경영권은 리벨리온이 맡기로 했다. 대기업 대비 스타트업이 시장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통합법인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인 지분 구조는 실사 이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는 실사를 통해 양사 기술 로드맵을 공유하고 연구개발(R&D)에 있어 협력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 위치한 사피온 R&D 조직과의 협업도 대상이다. 양사 모두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리벨리온과 SK텔레콤은 향후 2~3년이 세계 AI 반도체 시장 골든타임으로 보고 합병을 결정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AI 반도체 시장은 올해 428억 달러(약 59조원)에서 2027년 1194억달러(약 165조원)로 급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은 120여개 팹리스 기업이 있지만 AI 반도체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역량이 뒤처진다. 또 AI 반도체 기술 수준은 1위 미국 대비 80.0%, 기술격차는 2.5년으로 중국, 유럽보다도 낮다. 기반이 취약한 만큼 힘을 합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팹리스가 나올지 관심이다. 올해 1월 리벨리온이 16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면서 인정받았던 기업가치는 8800억원 수준이다. 사피온이 지난해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5000억원 수준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SK스퀘어, SK하이닉스와 함께 대한민국 AI 반도체 발전을 위해 통합법인의 세계 시장 진출과 경쟁력 향상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벨리온 관계자는 “실사를 통해 사피온코리아와 시너지를 만들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