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휴대폰 지원금 담합 법리 찾는 이통사, 소주·해운 담합 사건 '주목'

행정지도 담합사건 핵심 쟁점
행정지도 담합사건 핵심 쟁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조원 이상 과징금 추징이 가능한 휴대폰지원금 담합사건 심사보고서를 받아든 이동통신사는 치열한 법리검토를 진행 중이다. 통신업계는 유사 사건으로 2010년 심결이 이뤄진 소주업체 담합 사건과 2022년 해운사 담합 사건에 주목한다.

각각 국세청과 해양수산부라는 산업 주무부처와 소관 법률을 따른 사건에서 법원이 피심인 기업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본지가 두 사건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두 사건은 가격정보 교환과 규제 권한 측면에서 이통사 사건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통사들은 두 사건을 면밀히 분석, 하반기 공정위 심결에서 핵심 논거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주 담합, 국세청 감독 따른 가격조정은 정당

소주업체 담합 사건은 공정위가 이통사 지원금 담합 사건에서 문제 삼은 '가격정보 교환·가격 공동결정 행위' 의혹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대법원은 2014년 소주업체 사건을 담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하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앞서 2010년 2월 진로와 보해양조, 금복주, 한라산 등 9개 소주업체가 2007년 6월부터 2009년 1월까지 2차례에 걸쳐 출고가격을 인상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50억원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소주업체들이 사장단 회의 모임 등을 통해 가격인상을 논의한 정황이 있고, 당시 시장점유율 50% 업체 진로가 소주가격을 인상한 후 나머지 업체들이 곧바로 가격을 올린 점에 주목했다. 이같은 행위는 가격정보 교환과 가격공동 결정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한 행위로 봤다.

9개 소주 업체들은 이에 반발해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담합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담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물가안정과 주세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국세청의 감독에 따른 행위를 준수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세청이 소주 시장을 과점하는 진로를 통해 실질적으로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고 봤다. 진로는 국세청 감독하에 소주가격을 인상했고, 진로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국세청 방침과 시장상황에 대처했을 뿐, 사장들 모임이 있었다는 자체로 합의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같은 쟁점은 이통사들이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를 통해 번호이동 상황을 공유한 정황과 유사하다. 공정위는 이통사들이 시장정보를 공유하며 담합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통사들은 공개된 정보를 활용해 시장상황에 대응했을 뿐, 정보 공유 자체로 합의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운담합, 규제권한은 해수부 장관에게

해운담합 사건의 핵심 쟁점은 '규제 권한'과 관련한 문제다. 공정위는 2022년 1월 대만 에버그린, 한국 HMM, 고려해운, 흥아라인 등 23개 국내·외 선사가 한국-동남아 항로 해상운임을 담합했다며 964억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운사들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독자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에버그린이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얻어내며 관련 쟁점이 주목받고 있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해운동맹단체와 동남아정기선사업자협의회 통해 120차례 회의하며 가격을 조정하면서, 해수부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봤다. 해운법(제29조 1항)이 해운사들의 가격조정행위를 일정부분 허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해운사들이 운임을 공동으로 결정·유지하는 방식으로 해상화물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한 것으로 판단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에버그린 등 해운사들은 가격조정이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이며, 설령 공동행위에 경쟁법적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를 규제할 권한은 공정위가 아니라 해수부 장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신고·협의 의무도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사건에 적용된 공정거래법과 해운법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서도 규제 권한은 해수부에 있다고 판시했다. 과징금 처분 취소 판결도 내렸다. 공정거래법은 자유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기본법으로서 모든 사업자에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모든 경제활동을 시장 자율에만 맡기는 건 불가능하며 적용제외가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정기선사업의 경우 일정시간마다 규칙적으로 화물운송을 보장하는 '정시성'이 핵심가치인데, 무제한적 출혈경쟁을 할 경우 초기투자와 시장 변동성으로 산업 건전성과 공익성을 보장할 수 없는 예외가 인정되는 사업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해운법상 공동행위는 제29조를 통해 외항 '정기'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허용해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을 때도 해수부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되, 공정위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바, 해수부 장관이 해운 정기선사에 대한 규제권한을 지닌다고 보고 공정위는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는 해당사건 패소 후 대법원에 상고해 3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통사는 공정위가 문제 삼은 30만원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상황반 운영이 해수부의 감독권한, 규제권과 마찬가지로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실제 시장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 처분 이후 행정소송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는 “공정위와 이통사 간 행정지도와 법률적용 범위를 두고 이견이 심한데, 결국 법원이 판단하게 될 것 같다”며 “다만 부처간 행정지도와 법률 해석에 차이가 생기는 상황은 결국 사업자의 법적 안정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부처간 협의도 중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