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설경구, '흔들리며 굳건해진 38주년 OTT 신인'(종합)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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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생각 속에서 괴로움이 있다. 이번 박동호 역시도 그랬다. 안해봤던 것, 안겹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현장의 행복감을 찾는 것 같다” 배우 설경구가 데뷔 첫 시리즈작품 '돌풍'에서의 열연 이후의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에서 열연한 배우 설경구와 만났다.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 사이의 대결을 그린 '정치물 대가' 박경수 작가의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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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국무총리이자 대통령이 되는 박동호를 연기했다. 부패세력 척결이라는 신념을 위해 온갖 지략을 펼치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수트 스타일링과 말투, 눈빛까지 날카롭게 가다듬은 모습은 물론, 반대세력을 향한 폭주를 묵직하고도 날선 톤으로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야심만만한 대척점의 정수진을 연기한 김희애와의 몰입감 있는 공방전은 영화 '더 문'(2023), 개봉 예정인 '보통의 가족' 등에 이은 세 번째 완벽한 연기호흡과 함께, 기존 정치계 포인트들을 오마주한 듯한 캐릭터의 행보나 스토리 흐름으로 비쳐지며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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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리즈 도전 소회?

▲1994년 아침드라마 때와는 다른 환경이기도 하고, 영화보다 긴 호흡의 드라마기에 처음에는 긴장했다.

또한 작가님께서도 쪽대본이 유명하다고 하는 주변의 말들도 듣고서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평소에 쓰지 않던 문어체 대사기에 실제 쪽대본이 많았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사를 통해 대본도 빨리 나오고 원팀으로 쭉 촬영하다보니 재밌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이동이 없어서, 공간상의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그 조차도 즐거웠다.

-첫 드라마 출연 결정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박경수 작가님을 알지는 못했는데, 대본을 다섯 권 받고 나서 바로 승낙했다. 일상적인 대화체가 아님에도 그 안에 담겨있는 힘이 강하고, 대본도 한번에 다 읽혔다.

나중에 후시녹음을 할 때 작가님과 직접 소통을 해봤는데, 쑥스러움도 많으시고 말도 잘 못하시지만, 포인트를 잡아내시는 것이 보통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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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을 권유한 김희애, 원로배우 격인 박근형 등 선배들이 많았는데 현장은 어땠나?

▲여느 현장과 달리 '돌풍' 현장에서 저는 중간연령대였다. 그들이 품어주는 안정감과 함께 서로 제 역할을 하는 모습에 녹아들 수 있었다. 특히 박근형 선생님은 보조출연자 공간에서도 끝까지 연습을 거듭하실 정도로 집중하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이셔서 정말 놀랐다. 또한 김용완 감독님은 부드럽게 현장을 리드하면서도 꼼꼼하게 잡아내는 연출법으로 출연자들을 아우르셔서 특별했다.

-김희애와의 호흡은 어땠나?

▲42년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는 배우, 그 자체였다. 정말 많은 준비와 함께 리허설마저 열심히 하더라.

매순간 본인에게 철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녀같은 면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 뽐내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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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반전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부분?

▲아무래도 박동호의 죽음이다. 그 전부터 복선이 깔려있긴 하지만, 자신의 말을 독하게 지키는 캐릭터의 면모를 보면서, 판타지처럼 느꼈다.

촬영하는 순간에도 그 상황에 집중하다보니 힘든 기색 없이 접근했다. 물론 인간으로서의 본능으로 와이어줄을 잡기도 하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비하인드들을 다 견딜정도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현실 정치를 향한 비판이 섞여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정치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특정한 대상을 타깃화한 것은 없다. 물론 현실성이 맞닿아있다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한 신념과 타락한 신념, 그 자체로 인간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떠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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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설경구는 신념이 강한 사람인지?

▲흔들리는 편이다. 무언가의 철학을 갖기보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다.

-악을 차악으로 덮는 복수장르의 흥행은 어떻게 보나?

▲저돌적으로 싸우면서 나오는 극적 통쾌함과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신념의 완성들을 이상적으로 이뤄준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싶다.

-작품선택의 기준은?

▲해가 갈수록, 작품을 할수록 더 어렵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생각 속에서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겹쳐질 수 있다는 괴로움이 있다. 이번 박동호 역시도 그랬다. 머리로는 설계를 해내는데, 그만큼 안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공식화된 기간을 두고 재충전이나 캐릭터 연구를 들어가지는 않는다. 제가 안해봤던 것, 안겹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현장의 행복감을 찾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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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돌풍' 연기를 돌아봤을 때 어떤지?

▲처음 3부까지는 제 모습만 보게 돼서 무안했다. 이후 전체공개됐을 때 다시 보고서도 결말이 주는 재미보다 상황에 따른 대사나 호흡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드라마행보 계속할 것인지?

▲정말 경계가 없다. '돌풍' 전까지는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좋다면 할 것 같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