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시선] 통신, 여전히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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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와이파이 무선공유기(AP) 장애사태에 정부와 통신사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부가 파악한 장애규모는 6만3000건 이상이다. PC 등에 설치되는 보안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과도한 트래픽이 발생했고, 일부 와이파이 AP가 이를 수용하지 못해 장애가 발생했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개인 가입자에게 인터넷·IPTV 1일 요금과 장애시간의 10배 수준에 해당하는 추가 이용료 감면을 제공하기로 했다. 소상공인 가입자에게는 인터넷 서비스 1개월 치에 해당하는 이용료 감면을 시행하기로 했다. 장애규모가 적고, 통신사가 선제적으로 이용약관에 명시된 것보다 많은 보상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AP 장애 사태를 두고 한 공무원은 '백신을 맞았다'고 했다. 백신은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 않을 규모의 소량 바이러스를 투입해 저항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기본원리다. 이번 AP 통신장애 사태를 통신의 안전과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 위해 몇가지 시사점이 있다.

이번 사태는 통신재난이라는 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통신망 안전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통신망에 대한 한번의 실수, 관리 소홀이 대규모 경제 피해로 이어진다. AP 업체, 칩셋 업체, 보안업체 등 사건에서 여러 책임 소재가 엇갈릴 수 있지만 이용자 민원 7730건이 직접 향한 곳은 통신사였다. 사회 경제 손실은 물론 통신사가 직접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네트워크 관제, 장애 관리 시스템 등을 미리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더 나아간다면, 통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인공지능(AI)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핵심 화두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통신 3사도 모두 AI기업이라고 선언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면적인 AI 전환 흐름속에 통신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겠다.

AI 시장은 폭풍전야다. 엔비디아, 오픈AI 등 아직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뚜렷하게 돈버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통신사가 구글·MS·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AI 서비스 기업을 쫓아 직접 경쟁하려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것이다. 반면 통신 분야에서 아직 절대적인 AI 강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통신사들은 통신의 가치를 살리는 과정, 가장 잘 하는 분야인 디지털 인프라·서비스에 AI를 입혀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고민이 필요하다.

2000년대초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으로 인터넷 경제가 열리고, LTE 스마트폰 이후 온라인 동영상 시대가 등장한 것처럼 인프라와 콘텐츠·서비스는 상호작용하며 발전한다. 우리 통신사가 AI 산업 영역에서 통신을 이용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다면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통신망에 대한 투자도 계속 강화해야 한다. 통신사가 통신을 부정하고 AI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AP 장애사태가 통신재난이라는 질병 예방 효과를 넘어, 통신을 이용한 가치 창출이라는 산업 전체의 건강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