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사의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 운영과 번호이동 증감 조정이 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준수한 행위라고 명확히 확인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통사 담합 행위와 관련해 최대 5조원대 과징금을 산정가능하도록 예고한 가운데, 방통위가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이에 따라 사건 향방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3일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방통위는 '공정위의 이통3사 담합조사 관련 설명자료'를 통해 이 의원에게 사건에 대한 입장을 이같이 전달했다. 이통3사 담합 건과 관련해 방통위의 명확한 공식 입장이 드러난 건 처음이다.
앞서 공정위는 2015~2022년(만8년) 동안 △이통사가 온·오프라인 상황반을 운영하며 번호이동 순증·순감 수준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정한 행위 △이통3사와 KAIT가 판매장려금 허용범위(30만원)를 결정한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담합)에 해당한다고 봤다.
방통위는 이 의원에게 “방통위는 단통법에 근거한 각종 제도 시행을 통해 그간 규제전문기관으로서 이동통신시장을 규제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단통법은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자유경쟁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법으로, 방통위의 관리·감독 하에 이뤄진 번호이동 순증감 및 판매장려금 허용범위 결정은 정당한 법 집행과정이라 판단된다”고 전했다.
방통위 입장 핵심 키워드는 '규제권한'과 '정당한 법 집행'이다. 일반 상거래 시장을 규제하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이통사의 정보공유·공동행위를 담합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특별법이 있을 경우, 전문 규제기관 권한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가 존재한다. 단통법은 공시제도와 지원금 차별금지 원칙을 통해 이통사의 시장자유를 일정부분 제한하는 취지로 제정됐다. 일정 시기에만 시장이 과열돼 과도한 형태의 불법 보조금이 횡행하는 것은 다수 이용자에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 판매점에 대한 장려금 가이드라인과 번호이동 조정을 위한 상황반 운영은 단통법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통위 정책에 해당한다고 이통사는 주장한다. 방통위 입장은 이통사의 이같은 의견과 일정부분 일치한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지난 2월 2심에서 패소한 해운담합 사건과 쟁점이 유사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 평가다. 공정위는 2022년 해운사들이 해수부 감독하에 운임과 항로를 조정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에버그린의 항소 사건에서 공정위에 패소판결했다. 항로 조정 등은 해운법과 해수부 감독하에 이뤄졌고, 해운 산업에 대한 규제권한은 해수부 장관에게 우선 있다고 판단해 공정위 과징금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통사 사건도 법원이 단통법 특수성과 방통위원장 규제권한을 인정할 경우, 해운사건과 유사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부처간 불협화음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이제라도 규제권한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통사가 규제권한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억원~수조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을 경우 인공지능(AI) 투자, 마케팅비 투입 여력 저하 등 산업계와 이용자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이해민 의원은 “부처간 불협화음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와서는 안된다”며 “방통위와 공정위는 통신 이용자를 우선으로 놓고, 통신시장에 대한 특수한 법률을 고려해 명확하게 규제 권한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방통위는 공정위와 실무협의를 지속하며 입장을 설명하고 필요시 서면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