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와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혼란한 사회·경제 상황이 지속된다. 하지만, 혼란은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물밑에서는 새로운 사회·경제에 대한 설계도를 만들고 국민을 설득할 준비에 나섰다는 잠룡들 소식이 들린다. 벌써부터 자신이 개혁안을 만들어 정치권을 움직일 준비에 돌입했다며 소식을 전한 인사도 있었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에는 정치권과 정부는 더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방향이 드러나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대통령제 개선·내각제 등 권력 구조 재설계 논의는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도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분야가 많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원화된 ICT·방송 정부 조직체계를 이대로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ICT 분야 핵심 어젠다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는 이번 정부에서 사실상 한 번도 정상 운영되지 못했다. 방통위가 국민 여론을 움직이는 방송 정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여야의 전장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여야는 방통위와 국회에서 한치도 물러섬 없는 전투를 벌였다. 공영방송 이사진 임명, 이를 둘러싼 방송법 개정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 하지만, 제대로 결론은 내지 못했다. 여야가 서로를 적대시하며 정치가 실종된 상황에서 합의제기구라는 본연의 취지도 살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방통위는 ICT 전문 규제기관이다. 방통위의 ICT 분야 중요 업무인 인앱결제법 조사, 온라인플랫폼 정책 수립,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권한 침범대응 등 정책 추진동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공무원들은 고군분투했다. 과기정통부도 ICT 진흥과 사전규제 정책에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ICT 진흥과 규제를 일관적이고 효과적인 체제하에서 수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됐다. 당근과 채찍이 있어야 하는데 당근만 있고, 산업계를 움직이게할 규제수단, 채찍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세계가 인공지능(AI) 시대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정부조직체계가 적합한지 점검과 대안 논의는 탄핵정국이 아니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미 지난 정부들을 거치며 과기정통부와 방통위 통합을 통한 ICT 기능 일원화, ICT·과학·방송을 포괄하는 거대 독임제 부처, 미디어에 전문화한 미디어 위원회 전환 등 다양한 논의가 전개된 바 있다. 그때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방통위는 장관급이 1명에 차관급이 4명이라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이 나왔고 현실화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때 현재의 방통위 체계로 자리잡은 이후 10년 넘게 제 자리다. 하지만,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전면적인 국가 재설계를 해 나가는 상황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탄핵으로 인한 혼란한 정국에서 ICT 조직개편에 대한 이야기는 이른 감이 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대안으로 인정받으려는 정치세력이라면, 전문가와 산업계 의견을 널리 수렴하며 효과적인 ICT 조직·정책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는 일을 시작하기에 결코 이른 때가 아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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