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 판결로 파일교환네트워크(P2P) 저작권 침해 공방전은 음반사와 할리우드의 승리로 귀결됐지만 파장은 IT산업 전반으로 퍼져 나갈 전망이다.
판결 내용을 확대 해석하면 저장장치와 같은 일반적인 IT제품도 지재권 침해 소송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 쟁점은=21년 전 ‘소니 베타맥스’ 판례를 적용하느냐가 핵심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사용자들이 허가없이 TV방송을 녹화해도 불법 유통을 위한 게 아니라면 소니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도 P2P업체들이 합법·공공적인 목적으로 네트워크를 운용했는지가 쟁점이었다. 1, 2심까지 법원은 베타맥스 판례를 그대로 적용했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P2P업체들이 사용자의 불법복제 행위를 조장하면서 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록스터는 사용자가 컴퓨터에 저장된 허가받지 않은 불법 콘텐츠를 무료로 교환하는 것을 전제로 사업해 왔다”며 “하급법원이 소니의 판결을 너무 확대 해석했다”고 밝혔다.
◇P2P시장 위축 불가피=당장 불법 방조의 낙인이 찍힌 P2P업체들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소송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사이트 운용이 쉽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P2P업체들은 불복과 법정 싸움을 선언했지만 시간 벌기 성격이 짙다.
유료화 전환 가능성도 나왔다. 유니버설 뮤직과 손잡고 공동 서비스에 나서는 숀 패닝의 스노캡처럼 합법화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애플이 합법적인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를 성공시킨 것도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P2P가 사실상 무료를 전제로 활성화했다는 점에서 유료화의 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애플과 달리 마케팅력이나 자금도 부족하다.
◇비상 걸린 IT산업계=파장은 P2P시장 밖으로까지 번졌다. 소비자가 첨단기술을 이용해 저작권 침해행위를 하면 기술 제공 기업까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전문가는 “MS·애플·HP·인텔·어도비·선·델·시스코·시게이트 등 대표적 IT기업과 HDD·CDRW 등 IT제품 대부분은 저작권 침해 용도로 쓰일 수 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자유로운 업체는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를 예상한듯 대법원은 베타맥스 판례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합법, 불법을 가리는 기준으로 ‘개발자 의도’라는 조항을 내걸었다. 의도가 불순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지재권 침해 소송의 범위가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인텔이 “대법원에서 소니 판례를 유지한 점을 환영한다”면서도 단서 조항의 의미 파악에 골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됐다.
버라이즌 등 통신사업자들도 브로드밴드를 통한 다운로드 서비스가 소송 대상에 걸릴지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영향 미칠 듯=당장 소리바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초 형사엔 무죄, 민사엔 유죄 판결을 받아 상고심을 진행중이다.
양정환 소리바다 사장은 “솔직히 당황스럽다”며 “판결 의미를 더 분석해봐야겠지만 P2P 뿐만 아니라 웹하드, 메신저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 적용할 때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P2P시장은 위축되겠지만 불법복제방지소프트웨어와 디지털지재권관리시스템(DRM)시장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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