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핵전쟁과 SF

[SF 세상읽기] 핵전쟁과 SF

1945년에 미국 정부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모아 ‘맨해튼 계획’이라는 프로젝트로 단기간에 핵폭탄을 개발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새로운 무기가 얼마만큼의 위력이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인류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끝냄과 동시에, 핵폭탄의 무서운 위력과 함께 방사능 낙진과 같이 향후에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핵폭탄에 의해 피폭된 지역은 사실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대지가 돼버린다는 핵무기의 그 무시무시한 위력에 사람들은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전 세계 열강들은 ‘방어를 위해서라도 핵무장은 꼭 필요하다’는 이유로 핵무장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인류는 지구 전체를 통째로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개발해 비축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20세 후반 인류의 삶과 미래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등장한 핵무기 개발 경쟁은 과학기술 발전이 낳은 가장 대표적인 재앙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었고, 과학과 윤리 그리고 과학기술에 의한 인류의 미래 모습을 사색하는 SF 문학의 주요 테마로 자주 등장하게 됐다.

 핵을 테마로 다루는 작품들은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우선 핵 개발에 의한 국제정치 관계의 모습과 인류가 처한 딜레마를 다루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의 작가 모르데카이 로시왈트는 ‘세계의 조그만 종말(작은 아마겟돈)’이라는 작품에서 핵무기를 가진 잠수함 반란을 다루면서, 반란 이후 핵잠수함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을 가하면서 독립을 선언하지만, 영토라고는 한 줌도 없는 이 잠수함 하나에 대해 세계 각국이 쩔쩔 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핵무장한 잠수함 하나도 쉽게 제압할 수 없는 국제정치가 안고 있는 핵에 대한 딜레마를 예리하게 파고든 이 테마는, 훗날 일본의 군국주의 만화가 가와구치 가이치에 의해 다시 사용돼 ‘침묵의 함대’라는 작품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핵무기에 의해 인류가 정말로 멸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는, 멸망을 받아들이는 인류의 모습을 다루는 SF 작품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핵전쟁에 의한 인류의 멸망을 가장 인상적으로 다룬 작품은 호주의 소설가 네빌 슈트가 쓴 ‘해변에서(그날이 오면)’다. 이후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 주연으로 영화화되면서 더 널리 알려진 이 소설은, 남반구에 자리 잡은 호주가 당장은 핵전쟁의 참화를 면하지만 전 지구적인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다룬다.

 네빌 슈트는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의 마지막 구절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에서 전반적인 모티브와 분위기를 빌려와서 핵전쟁 이후 멸망하는 세계를 조용히 관조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고된 멸망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지만 호주의 시민들은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아름답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침착하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월터 M 밀러의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에서는 핵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멸망한 후, 용케 살아남은 자들이 품게 된 과학기술에 대한 강한 증오심으로 인해 수많은 책이 불타고 지식인이 죽게 되지만, 한 수도원이 인류가 쌓은 지식의 보고인 책을 몰래 모아서 후대를 위해 어떻게든 잘 지켜나가려고 애쓰는 노력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는 책과 지식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핵전쟁으로 인한 문명 세계의 멸망과 부활을 위한 노력을 다루면서, 새롭게 부활한 세계마저 다시 핵전쟁을 피하지 못한다는 윤회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태영 공학박사, 동양공업전문대학 경영학부 전임강사tykim@dong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