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대형 지진 참사와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지 반도체업체들의 피해 사례도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현지에 생산 기반을 갖춘 해외업체들은 물론이고 장비·재료 등 후방산업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타격이 서서히 현실화하고 있다.
EE타임스가 14일(현지시각)까지 일본 내 반도체 생산설비 피해 사례를 집계한 결과, 최소 10곳 이상의 생산라인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라인들은 이날까지 가동을 멈췄고, 반도체산업 전반의 공급망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결과 세계 3위 D램업체인 엘피다는 남서부 지역의 히로시마 라인이 이번 지진에서 타격을 받지 않아 정상가동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아키타의 패키징 라인은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현재 가동을 멈춘 상태다.
프리스케일은 센다이 지역의 150㎜ 웨이퍼 라인인 도호쿠반도체가 이번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언제 재가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후지쯔는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의 4개 반도체 생산라인이 피해를 입었다. 현재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있으며, 실적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될 경우 즉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르네사스의 5개 웨이퍼 공장과 2개의 후공정 패키징 라인은 최소 15일까지 폐쇄된다.
샌디스크와 도시바의 플래시메모리 합작 생산법인인 요카이치 공장의 2개 라인도 가동을 잠정 중단했다. 오는 18일께 생산을 재개하기로 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미호 공장은 심각한 타격을 입어 빨라도 오는 7월 중순까지는 정상적인 재가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미호 공장은 TI의 전 세계 매출 가운데 10%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피해다.
이밖에 장비·재료 등 반도체 후방산업군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히타치그룹은 이바라키현의 반도체 재료공장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 공장은 LCD 드라이버구동칩(LDI) 재료이자 히타치케미컬이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ACF 약품과 반도체용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세계 주요 반도체 웨이퍼업체인 신에츠는 건마생산단지를 재가동했으나 전력 수급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도쿄일렉트론은 마쓰시마와 센다이 지역의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현재 피해상황을 집계 중이다. 니콘은 반도체·LCD용 스테퍼와 스캐너 등을 생산하는 미야기 공장을 멈췄고, 언제 정상화할 수 있을지 확답하지 못했다.
시장조사업체인 VLSI리서치 측은 “일본 대지진은 반도체 재료 수급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특히 지진 피해지역에서 전 세계 웨이퍼 수요의 20%가량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향후 가격 동향 등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