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발명도 적자생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는 특허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둘이 동시에 같은 날 전화기 특허를 제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얘기다. 두 사람은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청에 전화기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전화기 최초 발명자는 아니다.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독일의 공립학교 교사였던 필립 라이스였다. 라이스가 전화기를 발명한 것은 벨이나 그레이보다 10년 이상 앞선 1860년대 초였다. 하지만 그의 발명품은 실질적인 통신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안토니오 무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벨의 전화발명을 무려 20여년 앞서 전기식 음성전달 장치를 발명했으며 2002년 미국 의회는 이 같은 사실을 공인했다. 무치는 중병에 걸린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전화기를 만들고 임시특허를 냈지만 매년 10달러가 드는 특허 갱신료와 200달러의 특허권 취득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권리를 포기했다. 당시 전화기의 상업적 가능성을 꿰뚫어 본 투자자도 없었기에 무치는 잊혀진 불운한 발명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벨이 그레이보다 한두 시간 앞서서 특허를 신청했기 때문에 정식 특허권자로 인정받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벨이 그레이를 제치고 전화기 특허권자로 인정받고 전화사업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특허를 먼저 출원한 것과는 관계가 없다. 빌과 그레이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바로 특허출원 이후 실용화 노력이다. 벨은 발명 이후에도 전화기가 통신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실용화 노력을 기울인 반면 그레이는 전화의 실용성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최초 발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용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벨은 단순히 전화발명으로 명성과 부를 얻은 것이 아니라 전화를 대중화하려는 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에디슨도 최초로 전구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에디슨 이전에도 많은 발명가들의 전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수명이 몇 초에 불과하고 실용화가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에디슨만 기억하는 이유는 에디슨의 전구는 수명이 길었고 전구 발명에 그치지 않고 실용화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고 대중적으로 보급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십여년 전 MP3플레이어도 그랬다.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내놓은 것은 우리나라 기업이었다. 그러나 널리 보급하는데는 실패했고 애플은 아이팟으로 전 세계 시장을 흔들었다. 결국 역사는 최초 MP3플레이어가 아닌 애플의 아이팟만 기억할 것이다.

 지난 15일 애플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태블릿PC)가 자사 제품을 베꼈다며 미국 법원에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냈다. 제소 배경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애플이 최대의 전략적 파트너인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은 비즈니스 정글에서 영원한 동지는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물들이 자기 영역 표시를 하듯 현대 지식정보사회에서 기업들은 경쟁기업이 지식재산권 침해에 아주 민감하다.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에 항상 촉수를 드리우고 있다.

 기업은 최초 발명자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통하는 시장에서 최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다윈의 적자생존은 시장에서도 통하는 진리다.

 권상희 정책담당 차장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