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17일 일요일 새벽 5시. 어둠을 뚫고 인천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1층 입국장 게이트 앞에 자리잡고 숨을 돌리니 정신이 몽롱하다. 잠을 설친 탓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등 뒤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공항청사 유리외벽 창틀이 붉게 변해갔다. 붉은 태양이 하얗게 변하면서 온 세상도 환해진다. 날씨 참 맑다. 정신도 맑아진다. 어느덧 6시 40분이다.
수첩과 펜을 들고 공항으로 달려 나온 게 한 달 사이 세 번째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 새벽 공항으로 달려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아가 났다. 다른 신문기자들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입국장 게이트가 열린다. 나오는 무리 속에 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이 보였다. 달려갔다. 다른 기자들도 그를 에워싼다. 질문을 쏟아낸다.
“협상 결과는 어땠습니까?” “(매각협상이) 타결된 겁니까?” “(현지에서 합류했던) 하이닉스반도체 경영진은 함께 귀국하지 않았나요?” 잠시 주춤하던 이 부행장이 입을 땠다. “잘됐습니다.” “네, 상당부분 합의했습니다.” 기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상당부분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나요?” “사실상 타결이라고 봐도 되는 거죠?” 부행장이 답했다. “90%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가 기자들을 뿌리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종종걸음 쳤다. 기자들은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며 그 자리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타결이 안 된 나머지 10% 내용이 궁금했다. 그를 뒤쫓았다. 물었다. “매각금액에 합의를 본겁니까?”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인수조건으로 채권단에 내건 23억달러 지원, 가능한가요?” “(마이크론이 요구한) 풋백옵션을 채권단이 수용할 수 있나요?” 그가 답했다. “그 내용들은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민감한 내용들이 타결된 게 하나도 없잖습니까?” “그래도 나머지 것들은 큰 틀에서 합의했습니다.” “나머지 소소한 거 다 합의했어도 중대 현안에 합의하지 못했다면 이번 방미협상에서 얻은 건 없는 거 아닌가요?” 그는 주차장에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물었다. “타결인가요? 결렬인가요?” 승용차 뒷문을 닫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좋은 결과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탄 차는 주차장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다음날 신문기사 제목은 대부분 이랬다. `매각협상 타결 임박, 사실상 타결` 전자신문만 달랐다. `협상 장기화 불가피`. 신문사엔 난리가 났다. 전자신문만 상반된 내용의 기사를 썼으니 그럴밖에. 어느 기사가 맞는 지는 한 달 후 확인됐다.
2002년 4월 30일 오전 10시,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기업매각안을 부결시켰다. 찬물을 끼얹은 하이닉스반도체에 정부와 채권단 반응은 냉랭했다. 회사 경영권을 채권단이 접수했다. 독자생존이란 말은 입에 담을 수도 없었다. 채권 회수가 목표인 채권단이 연간 수조원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 특성을 이해할 리도 만무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아~ 하이닉스.
이랬던 하이닉스반도체가 꼭 1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SK하이닉스이란 새 옷을 입고, 메모리 업계 2위가 돼서. 그 사이 중국 공장도 지었다. 플래시메모리 사업에도 진출해 튼실한 성장동력도 마련했다. 강해졌다. 반면 마이크론은 2위에서 4위로 처졌다. 시장점유율이 SK하이닉스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SK하이닉스가 이제는 일본의 자존심 엘피다메모리 인수여부를 놓고 저울질한다. 행복한 고민이다. 오호~ SK하이닉스. 10년전과 달리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정말 반갑다, SK하이닉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