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 패러다임 변화해야

지난 10년간 정부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의존도를 줄이고,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1조3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많은 중소·중견 팹리스를 발굴하고, 국산화율을 현재 4.3%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ET단상]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 패러다임 변화해야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 비중이 증가하고,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로 원가가 상승하면서 중소 팹리스 업체는 대기업에 시장을 내주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TV, 통신용 디지털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중견급 기업이 시장 포화 및 대기업의 시장 잠식으로 더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많은 팹리스들이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자동차, 전력 등 고신뢰 반도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고신뢰 반도체 산업은 일부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된 디지털TV, 통신용 시스템 반도체와는 달리, 소량 다품종 생산이 가능하다. 반도체 공정 가격에 대한 부담도 적어 기술력이 있는 중소 팹리스의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 스마트그리드, 로봇, 의료기기 분야 등 미래유망 산업으로 향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기술 분야이므로 현재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신뢰 반도체 분야는 인간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에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이 추가된 것으로서 신뢰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술 장벽이 존재한다. 유럽·일본·미국 등 선진국은 자동차·국방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고신뢰 반도체 개발을 추진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는 국제 표준인 ISO 26262 등을 제정해 후발주자의 추격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ISO 26262는 신뢰성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반도체·부품은 더 이상 자동차 회사에서 구입할 수 없도록 만든 표준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ISO 26262 표준 및 관련 개발기술에 대한 정보가 전무해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대응책 마련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국토해양부에서는 자동차에서 최근 3년간 6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는 급발진 사고 원인을 밝히고,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 위해 자동차 급발진 합동조사반을 구성했다. 자동차 급발진의 주요 원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관련 전문가들은 자동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부품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사실이 입증되면 국내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반도체·전자부품 업계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지식경제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고신뢰 반도체 산업이 제시하는 미래 비전을 현실화하고, 국내 여러 환경의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해 고신뢰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전력 반도체 기술개발 예비타당성 조사와 고신뢰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한 발전전략을 수립 중이다. 또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해 동반성장 포럼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정책적 뒷받침과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노력으로 고신뢰 반도체가 향후 10년 후에는 현재의 메모리처럼 국내 산업을 지탱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기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kslee@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