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시회에 현대자동차는 13종에 이르는 2, 3세대 스마트카 선행 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대화형 음성 인식을 비롯해 운전자 상태 감지(DSM) 시스템과 3차원 동작 인식, MHL(Mobile High-definition Link) 기반의 스마트폰 연동 기술 등이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달리는 사무실`을 미래 스마트카 컨셉트로 제시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아우디 등 경쟁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스마트카 기술력을 과시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DSM 시스템 핵심인 센서 등의 원천 기술을 대부분 외국산 부품에 의존했다. 국내 스마트카 시스템과 부품 선행 개발 사이에 `엇박자`가 생겼다.
스마트카 기술에서 완성차와 부품업체 간 불균형은 심하다. 현대기아차는 스마트카 시스템 통합과 적용 노하우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현대모비스, 만도 등 전장 및 부품 기업의 원천 기술 확보는 지지부진하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부문의 기술 격차는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1.3년에 불과하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가 공격적인 연구개발과 해외 생산 확대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덕분이다. 문종덕 산기평 스마트카 PD는 “완성차 단위에서 우리나라가 `패스트 팔로어`를 벗어나 세계 톱 클래스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 기반인 전장 및 부품 설계 기술은 아직도 크게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운전자 안전에 필수인 고안전 반도체 및 전장 기술은 유럽에 비해 길게 5년 가까이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해 그룹 내 반도체 및 전자제어 연구개발 조직을 통합해 출범한 현대오트론도 이 같은 고민에서 나왔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그룹 내 전장 부품 기술력이 보쉬, 콘티넨털, 덴소 등의 경쟁 업체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가에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오트론이 전자 관련 연구개발 인력들을 대거 수혈하지만, 반도체 연구개발 성과를 도출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완성차 및 부품 대기업이 협업을 바탕으로 원천 기술을 개발하려고 해도 2차 부품 및 팹리스 업체 기반이 취약한 것도 엇박자의 원인이다. 독일이 2, 3차 협력업체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연구개발 체계를 갖춘 것과 대비된다.
또 다른 문제는 전자와 자동차 산업 간 융합 시도가 미진하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삼성, LG, SK를 포함한 4대 그룹 간 미묘한 경쟁 심리가 융합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업계 관계자는 “휴대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차와의 협업 시도는 사실상 전무했다”며 “독일, 일본 등의 자동차 선진국들이 자국 내 연구개발 카르텔을 통해 원천 기술을 선점한 추세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