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간 주도 반도체 R&D, 참신한 실험

정부와 민간이 미래 반도체 소자 개발을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기업과 정부가 돈을 대고 대학과 연구소가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과거 정부가 기업에 R&D 자금을 지원해서 개발하던 방식과 다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정부 R&D 수혜자에서 국내 반도체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투자하는 후원자로 입장을 바꿨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다.

더욱 놀라운 것은 R&D 결과물인 지식재산권(IP)을 투자기업이 아닌 학교와 연구소가 보유하도록 한 점이다. 학계의 연구 역량을 강화함은 물론이고 향후 중소·중견기업 등의 개발기술 활용 가능성도 열어 놓은 셈이다.

이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 반도체 업계의 기술 원천이 된 `반도체연구조합(SRC:Semiconductor Research Corporation)` 모델을 벤치마킹해 도입했다고 한다. SRC는 미국 민관 반도체 연구 컨소시엄으로 정부와 15개 기업이 연간 약 1억달러를 투자하고 연구소와 104개 대학의 교수·학생이 참여해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국내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2위인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반도체 장비 점유율 5위권에 포진한 ASML·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도쿄일렉트론(TEL)·램리서치 등이 참여해 산업부와 함께 한국형 SRC를 실현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 사업은 앞으로 5년 동안 25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산업부의 한국형 SRC 모델은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 이상 점유하다가 최근 10%대로 떨어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지금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하고 있지만 잠시 한 눈 팔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수성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참신한 R&D 시도가 성공 모델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