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주로 토종 업체를 후공정 협력사로 뒀던 SK하이닉스가 최근 외주조립(패키지) 분야에서 해외 협력사 비중을 늘리고 있다. 패키지 외주 단가와 부품·자재 조달 원가를 조정한 데 이어 패키지 협력사 구도를 대폭 정비하려는 움직임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대표 박성욱)는 그동안 거래 비중이 높지 않았던 앰코테크놀로지·스태츠칩팩 등 글로벌 후공정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최근 협력사 선정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세미텍·윈팩 등 한국 중소기업과 주로 거래해왔다. 범용 메모리 패키지를 외주 생산하고 프리미엄급 제품은 직접 후공정 처리하는 이원화 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근래 임베디드 멀티미디어 카드(eMMC), 20나노급 그래픽 DDR3 D램 등 고부가가치 낸드플래시와 모바일 D램 사업을 강화하면서 이같은 후공정 전략을 바꿨다.
무엇보다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차세대 주력 제품으로 개발 중인 eMMC는 낸드플래시 구동칩(컨트롤러) 기술이 중요하다. 컨트롤러와 메모리를 어떻게 배치하고 패키징하느냐가 성능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출시한 20나노급 4Gb 그래픽 DDR3 D램 역시 웨이퍼 가공시 특수한 장비와 설비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퀄컴·애플 등 대형 고객사가 특수한 패키지 방식을 요구하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직접 설비 투자를 단행하기보다 이미 제조 능력을 갖춘 해외 협력사를 활용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메모리·시스템반도체를 한 패키지에 묶는 `와이드I/O` 기술과 실리콘관통전극(TSV) 패키지 기술이 도입되면 글로벌 협력사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영입한 오세용 제조부문장 사장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평도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세계 일류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서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도 업체들과 손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 사장은 `삼성 펠로` 출신의 반도체 패키지 분야 권위자로, 지난 2009년에는 한국마이크로전자 및 패키징학회(KMEPS)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앰코테크놀로지와 스태츠칩팩도 SK하이닉스의 주문에 대응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는 인천 송도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해 프리미엄 패키지 라인을 갖추기로 했다. 스태츠칩팩 역시 오는 7월부터 인천공항 자유무역지역에 10만117㎡ 규모의 제조·연구개발(R&D) 단지를 조성한다.
이에 따라 기존 중소 패키지 협력사들은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당분간 범용 메모리 설비 투자를 자제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판가 인하에 나설 것은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SK하이닉스 의존도가 높은 세미텍·윈팩은 지난해보다 매출액이 각각 20%·21% 감소한 216억원·137억원에 그쳤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