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추진 WTO ITA 품목 확대, 연내 타결 불투명

IT제품의 관세 철폐를 규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 개정 작업의 연내 타결이 불투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개정을 주장하는 선진국과 달리 몇몇 개도국이 강하게 반발해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최근 회의에서 국가 간 민감 품목 논의에 들어서자 바로 이견이 발생했다”며 “연말까지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봤는데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회의 폐막 시 차기 회의 일정을 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며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1997년 협정 타결 이후에도 추가 협상이 있었지만 민감 품목에 대한 국가 간 견해차로 결렬된 전례가 있다.

회의는 지난달 중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연합(EU)에 속한 29개국과 미국·중국·일본 등 53개국이 참여했다.

무관세화를 논의 중인 품목은 HS코드 기준으로 대략 260개 품목에 달한다. 1997년 처음 무관세화를 적용한 반도체 소자, 컴퓨터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통신·계측장비, 반도체 제조장비 등 203개 품목보다 수적으로 크게 늘었다. 논의 중인 품목으로는 디지털TV, 세탁기·냉장고·에어컨 등 디지털가전 등 소비재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장비와 부품, 의료기기·게임기·내비게이션 등이다.

선진국은 대다수 품목의 무관세화를 주장하는 반면에 개도국은 일부 품목에 반대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이견이 많다. 기본적으로 IT 수출 확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지만 미국·유럽 등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 대한 수출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품목별로도 계산이 다르다. 의료기기는 선진국 제품과 비교해 경쟁력이 열세여서 반대 입장이다. TV 등 소비재는 높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이미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긴 상태여서 중국기업과 비교해 실익이 크지 않다. 반면에 수입 비중이 큰 제조장비·부품 등은 수입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한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국가 간 견해차가 크지만 연내 협상 타결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차기 회의가 연말에는 있을 것”으로 보며 “제네바에 파견 나와 있는 담당자 간 지속적으로 비공식 협의를 진행해 빨리 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이 대상 품목 수를 줄이는 방향에서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내다본다. 현재 선진국은 16년 만의 개정인 만큼 최대한 다수 품목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가 어느 정도 리더십을 발휘해 양보를 끌어내는지에 따라 타결 시점이 결정될 것”이라며 “절충이 된다면 연내에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권 연구원은 이어 “ITA 개정은 수십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쟁력이 약한 부분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업계의 적극적인 관심을 주문했다.


【표】1997년과 현재 논의 중인 ITA 대상품목

※자료:삼성경제연구소, 산업통상자원부

◆용어설명:WTO 정보기술협정(ITA)-IT제품 무관세를 규정한 국제협정으로 1997년 1월 처음 발효됐다. WTO 회원국 가운데 세계 IT무역 자유화를 지지하는 국가들이 참여하며, 작년 9월까지 74개국이 ITA 협정에 서명했다.

16년 만에 추진 WTO ITA 품목 확대, 연내 타결 불투명


김준배·이호준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