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비메모리 반도체와 핵심 인재 양성

[전문가 기고]비메모리 반도체와 핵심 인재 양성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선발업체들을 모두 따돌리고 선두주자로 성장한 데에는 한발 앞선 투자가 주효했다. 덕분에 앞으로 상당기간도 우리나라가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변함없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기업이 수만 개 업체와 싸워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는 핵심 인재 양성을 위한 과감하고 한발 앞선 투자에 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가장 중심에 둬야할 것이 핵심 인재 양성이다. 비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 있는 시장이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에 특화돼 개발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소수의 기업이 고급 인력을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비메모리 시장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는 유럽,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선진국들과도 확연한 차이가 났다. 이미 선진국과 신흥기술국은 다양한 고급 일자리를 최대한 제공할 수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투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메모리 반도체 디자인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배경이다.

우리가 당장 실천해야 하는 핵심 과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비메모리 반도체 엔지니어 육성이다. 이를 위해 선진화된 기업과 반도체 교육에 특성화된 대학과의 긴밀한 산학 협력이 절실하다. 또 여기에 정부의 과감한 인재 투자 정책이 병행돼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연수 지원 시스템을 구체화해야 한다.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꿈꾸는 어린 엔지니어들에게 확실한 비전과 미래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시아 주요 국가에 현지법인을 둔 독일계 글로벌 비메모리 업체 인피니언은 싱가포르 정부가 100% 지원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약 200명의 현지 대학 졸업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1년 동안 독일 인피니언 본사 R&D 본부에서 박사급 개발자들의 보조역할을 하면서 현지 체험을 하고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인피니언의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의 전초기지로 떠올랐으며 연수를 거쳤던 엔지니어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이는 10년 간 투자의 결과다.

독일 정부와 인피니언은 대학에 대한 투자를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투입한다.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관심이 있는 대학에 프로젝트를 주고 그 결과를 모니터링 후 우수 인재를 직접 R&D 본부 실험실로 초빙한다. 숙련된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를 붙여 기술을 전수한다.

반면 유감스럽게 우리 기업들의 공채 선발 방식은 핵심 반도체 엔지니어를 양성하기 힘든 구조다. 산학 협력 장학금만 지원하고, 비전 있는 인재를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공채로 뽑은 인력을 입사 후 교육시키는 방법은 비메모리 강국으로 도약하기에는 효과적 방법이 아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절실히 필요한 엔지니어는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 아니라 경험 있는 고급 엔지니어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엔지니어 육성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산학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기간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유럽, 미국, 일본 같은 선진 교육 시스템에서 나온 성공 사례들을 적용하는 지혜가 시급하다. 또 전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고안전 차량용 반도체, 고전력 반도체 등에 대한 기술 보유는 국내 독자 개발이 아닌 국제공조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열린 산업 진흥을 위해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과의 기술적 제휴도 과감히 검토해야 하는 배경이다.

이승수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코리아 지사장 Scott.Lee@infine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