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김지하씨는 우리문화의 특징을 `발효문화`로 표현했다. 역시 영감이 높은 시인의 메타 언어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섞어서 발효시키는데 탁월한 DNA를 가지고 있다. 현대과학의 학문적 연구와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도 선조들은 태생적인 문화 기질과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발효문화의 창조적 기질로 신상품을 생산했다. 발효 문화 기질은 과학기술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정치·문화·예술·스포츠·종교 분야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서 흥미롭다. 김지하 시인의 탁월한 식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발효식품은 각 민족에 따라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재료에 따라서 농산물 발효식품, 축산물 발효식품, 수산물 발효식품으로 구분된다.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하는 방법에 따라서 자연발효, 인공발효로 구분된다. 미생물 관련 기술이 발달되기 전에는 모두 자연발효 방식으로 만들어 먹었지만 미생물 연구, 발효기술 개발, 대량 생산의 필요성에 따라서 유익한 미생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발효식품공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발효식품은 세계 으뜸이다. 전통 발효식품으로 김치, 막걸리, 메주, 젓갈, 식초가 있다. 근대적인 발효기술 도입으로 맥주, 포도주, 위스키, 요구르트, 치즈, 아미노산, 핵산조미료도 멋진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은 비록 식품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의 효능을 나타내기도 한다. 발효는 미생물과 효소의 힘을 이용해 소재를 분해합성하고 분해과정에서 미량성분, 영양소, 생리활성물질이 생성된다. 최근에는 각종 과일, 채소를 발효시켜 효소라는 이름으로 건강음료를 만들어 먹는 것이 붐을 이루고 있다.
김치가 세계인의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력, 과학기술, 문화 교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 일본, 독일에도 백김치와 유사한 발효식품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김치의 맛, 기능, 품질의 다양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시대적 요청에 농림부 산하에 `김치연구소`가 설립됐으며 과학적인 기능성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김치 대량생산 공장이 설립되면서 김치의 종균을 첨가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김치의 기능성을 증진시키는 종균산업이 앞으로 새로운 경제력을 창조해낼 것이다. 김치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그 종류마다 종균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김치가 여러 가지 건강의 기능성을 나타내는 것은 어떤 특정 성분 한두 개의 효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치 제조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재료 즉 무, 배추, 마늘, 파, 생강, 당근, 양파, 젓갈류 등의 혼합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유기산, 미네랄, 비타민, 아미노산, 단백질, 펩타이드, 지방산, 섬유소, 유산균 대사산물, 생리활성물질, 그리고 살아있는 유산균의 생리 면역학적 복합기능 덕으로 봐야 한다.
김치는 숙성시간에 따라서 유산균 분포가 달라진다. 먹기에 가장 맛이 좋은 상미기간의 우점 유산균을 분리해서 종균으로 개발했다. 김치에는 항암작용, 신경전달물질, 면역조절물질, 생리작용 등 여러 가지 건강기능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쉬운 점은 과학연구를 추구하는 연구방법이 단일물질 중심으로 진행돼 김치처럼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식품의 효능을 충분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험동물이나 인간을 겨냥한 임상연구 필요성이 요구되지만 제한된 조건에서 실행되는 현재 연구방법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발효식품의 건강기능성이 과학적으로 규명되면서 의약품 대체용으로 발전하고 있다. 발효에 사용되고 있는 미생물 기능성 연구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산균의 장내 면역조절 기능이다. 연구 결과, 새로운 용어 `프로바이오틱스`가 학계 유행어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 한국유산균학회 주관으로 `유산균의 프로바이오틱스와 건강기능성`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에 10개국 학자가 모여 연구발표와 집중토론을 벌였다. 중심과제는 유산균 발효식품에 관한 기능성이었으며 우유의 발효, 채소류의 발효, 심지어는 미강의 발효에까지 관심 분야가 발전하고 있다.
발효 미생물 중에서 유산균을 이용한 자궁경부암 오럴백신 개발과 임상단계 이용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조선시대 우리 국민 평균수명은 19세였지만 지금은 80세로 늘었다. 이유는 경제발전, 영양상태 호전, 생활환경 개선, 의약 발전 등 효과가 크지만 발효식품 보급이 크게 이바지했다고 본다. 발효식품은 앞으로도 기호성, 건강기능성, 다른 식품과의 융합성 등을 특징으로 하여 새로운 발효기술의 개발, 기능성 미생물의 이용을 촉진시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강국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ReSEAT 프로그램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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