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재용(JY) 부회장으로의 경영승계 작업이 빨라지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던 수년 간 외면했던 백혈병 근로자 보상방안 논의도 본격화됐다.
삼성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정치 일번지 여의도 풍경부터 달라졌다. 뱃지를 단 의원님들과의 표면적 접촉이 부쩍 늘었다. 반도체 백혈병 사건부터 삼성전자서비스 문제까지 현안은 다양하다. 삼성을 대하는 의원님들도 언사도 조심스러워졌다.
본사 주변 강남역은 어떤가. 건물 주변의 분위기도 사뭇 변했다. 각종 집회를 하는 단체와 관할서 소속 전경버스가 즐비하다. 불과 몇해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과거 자회사였던 노비타 직원들의 집회를 본 것을 제외하고, 태평로 시대에서부터 강남역 시대까지 십수년 동안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과거처럼 집회신고를 해놓고 실제로는 집회를 하지 않는 ‘유령집회’가 사라진 탓인가.
대언론관계는 특별히 큰 변화가 감지된다. 올 들어 기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일부 매체에 대해선 강경 일변도다. JY로의 경영권 승계 문제라면 거의 즉각적 반응이 나온다. ‘우리에게 잘못 보여선 좋을 게 없다’는 무시무시한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느낌이다.
삼성의 이 같은 무언의 압력은 실제 언론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취재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기자들 역시 일부이길 희망하지만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추세다. 안대희·문창극이라는 두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켰던 기자들의 열정과 취재력은 삼성가(家) 앞에만 서면 맥을 못 춘다. 소위 맞짱을 뜬다던 블로거들 역시 개점휴업 상태다.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왕이 된다’는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물론 언론사 입장에서 삼성은 최고의 광고주다.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삼성에 밉보여 좋을 것 없다’, ‘삼성이 등을 돌리면 끝장이다’라는 인식이 언론계에도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되고 있다. 삼성이 만든 ‘프리즘’과 ‘프레임’은 언론산업 구조뿐 아니라 일부 기자들의 의식구조 자체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있는 셈이다.
삼성은 지난 수십년 동안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삼성제일주의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수식어가 그것이다.
언론계 종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같은 가족끼리 상대방에 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가족주의에 위협이 가해질 때 삼성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다.
지난 40년 동안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의해 조정 통제돼 왔다. 총과 칼을 들고 있는 군인들이 통치하는 암울한 시대도 있었다. 이제는 자본의 힘이 언론을 좌지우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새로운 ‘질문의 힘’을 보여 주지 못하는 언론도 자본의 주인이 된 삼성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건 아닐까.
김원석 글로벌뉴스부 부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