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미소 띤 JY, 이제 말문 좀 엽시다

[데스크라인]미소 띤 JY, 이제 말문 좀 엽시다

삼성이 ‘갑자기’ 상냥해졌다. 창업 이래 강경 모드를 유지해온 노조 문제나 반도체공장 피해자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보인 태도가 그렇다.

지난달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사의 단체협상이 타결됐다. 이전과 달리 중단된 협상을 다시 이끌어간 게 사측 교섭단이었다. 서비스노조지회가 꾸려졌을 때 자신들은 협상 주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협상문에 삼성전자서비스의 사과까지 명시한 걸 보면 집회조차 강경하게 막아왔던 삼성이 맞나 싶을 정도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과의 협상에서도 돌변했다. 권오현 부문장의 사과로 시작된 ‘친절한 삼성’ 기조는 협상단에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이 합류하면서 말투까지 달라졌을 정도로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보상 문제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태도만큼은 피해자를 사기꾼 취급하면서 몰아쳤던 이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삼성의 깜짝 변화는 이건희 회장이 위독해진 시기와 맞물린다. 재계는 이재용(JY) 부회장으로 후계 승계를 순탄하게 이끌기 위한 ‘선심성 이벤트’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승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협화음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태도 변신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후계 승계가 마무리된 이후에 언제든지 ‘매몰찬 삼성’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승계 연착륙을 위한 또 다른 변화도 활발하다. 그룹 계열사들의 연이은 상장 추진과 공익재단들의 지분매매가 그렇다. 삼성SDS·삼성에버랜드 상장계획 발표가 이어졌고 지난주에는 삼성에버랜드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변경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삼성 관련 공익재단들의 지분 매매가 진행되면서 삼성가 3남매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항간에는 지주 회사 체제 전환설도 여전하다. 계열사 간 후계 승계 지원 역시 한마음 한뜻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JY다. 연출된 듯한 미소를 띤 사진만 공개될 뿐 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차단돼 있다. 그룹 전체가 친절 모드로 바뀌고 변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초지일관 같은 표정만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 기업을 물려받을 그의 경영 능력이 궁금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니 진면목을 알아낼 도리가 없다. 해외 언론으로부터 ‘은둔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 신라호텔 영빈관에 마련된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 안내를 한 것이 그의 최근 업적이다. 시진핑 주석과의 오랜 인연이 소개되면서 ‘후계자’로서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식의 ‘준비된’ 삼성 관계자의 말만 이어졌다. JY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만 보여줄 뿐이다.

e삼성 경영 실패 후유증으로 말없는 은둔형이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화끈하게 경영 수업을 받았다고 치자. 대승적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백조원을 책임져야 하는 그룹 총수에게 몇 백억 손해가 대수겠는가.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우선 말문부터 열어 스스로에게 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래야 삼성을 위해 희생한 이들이나 삼성 그룹을 지탱해 주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아니겠는가.

서동규 SW산업부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