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책을 ‘최근 10년 이래 가장 중요한 경제학책’이라 극찬했다. 이 책은 지난해 8월 프랑스에서 출간됐으나 지난 3월 영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단숨에 40만권이 팔렸다.
43살의 소장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이 책 하나로 ‘피케티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21세기를 뒤흔든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아니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라고 할 정도다.
피케티는 미·영·프·인도 등 20개 국가의 300년에 걸친 방대한 데이터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자본의 평균 수익률은 5%대를 유지했으나 전체 경제성장률은 이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가의 경제력과 임금소득자의 경제력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주요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연 1~1.5%에 머물고 있지만 자본 이익률은 4~5%나 된다. 그는 현재 세계경제구조라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영원히 높을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자본가의 경제력과 임금소득자의 경제력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결국 개인이 평생 버는 소득보다 상속받은 부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고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지금 세계가 ‘상속 엘리트가 물려받은 부에 의해 지배되는 신빅토리아식 계급사회’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경제가 ‘세습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우리나라 재벌은 세습자본주의에 천착한 대표 사례다. 글로벌 기업이라 자부하는 삼성도 3세 승계 작업에 한창이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일부 승계했으며 이제 완전한 승계를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한 일부 임원들의 앞뒤 안 가리는 충성 경쟁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눈길은 곱지 않다. 승계를 위해 수많은 불법·탈법행위가 이뤄진 때문이다.
그리고 경영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3세에게 기업 경영을 맡기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기업 리스크를 떠나 국가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건전한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을 저해하는 것도 큰 문제다. 부의 세습과 이에 바탕을 둔 견고한 세습자본주의는 자수성가형 기업가의 등장을 저해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이 흘러 들어오고 흘러가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창업을 활용한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피케티는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고 80%의 누진세율과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해법의 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불평등을 핫이슈로 끌어냈다는 점에 비하면 이런 문제는 오히려 사소하다는 평가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곧 선보일 한국어판이 삼성의 3세 승계와 맞물려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거대한 쓰나미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