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달 탐사 사업이 차질을 빚은 것은 410억원 예산 전액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대형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적합 판정까지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한 푼의 예산도 얻지 못했다.
국회에서 예산이 삭감된 이유는 ‘쪽지예산’ 논란이 제기되며 여야간 정치적 공방이 벌어져서다. 쪽지예산이란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사할 때 의원들이 지역구 민원사업을 끼워 넣는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야당이 달 탐사 사업 예산이 쪽지예산이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제기됐고 달 탐사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벌이는 우주쇼’라는 비난까지 나오며 결국 예산 통과가 무산됐다.
과연 달 탐사 예산이 쪽지예산이었을까.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뒤늦게 달 탐사 예산을 신청한 것은 맞다. 문제는 슬쩍 끼워 넣기 위해 달 탐사 예산을 늦게 제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3일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했는데 달 탐사 예타 결과가 미래부에 통보된 것이 25일이기 때문이다. 예타 결과를 반영해 예산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달 탐사는 단기간에 급조된 사업이 아니다. 우리나라 우주기술 개발 목표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계획돼 왔다. 2007년 ‘우주개발 세부실천로드맵’, 2011년 ‘제2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 등을 거쳐 이번 정부에서 한국형 달 탐사 계획을 만들었다. 정권 차원의 사업이라기보다는 우주기술 확보를 위해 단계적으로 준비해 온 사업이라는 의미다.
일정에 다소 차질을 빚겠지만, 향후 달 탐사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내년 예산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과학계는 달 탐사에서 정치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달 탐사를 통해 우리가 강점이 있는 IT와 우주기술의 융합을 시도할 수 있다”며 “달 탐사 예산은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을 제외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에 달 탐사 예산을 확보하면 시험용 달 궤도선 본체 등 실물 개발에 착수한다. 시험용 달 궤도선이 수행할 과학임무를 확정하기 위해 탑재체 선정 절차도 진행한다. 달 탐사선과의 통신, 추적, 초정밀 심우주 항법을 수행할 심우주 지상국 개발에 들어가며 미국 등 외국과의 상호 교차지원이 가능한 심우주지상국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 활동도 시작할 계획이다.
문해주 미래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달 탐사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내년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대국민 약속을 실천하기 위한 사업인 만큼 반드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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