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지며 일본과 중국의 주요 언론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긴근 타전했다.
외신들은 30여 년에 걸친 `군정(軍政)`을 종식한 첫 대통령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정치 역정과 1993∼1998년 재임 기간의 공과를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고인이 20대 후반에 국회의원이 되며 정계에 진출한 뒤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면서도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USA투데이와 ABC방송이 AP통신의 기사를 인용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22일 긴급 속보를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혈액 감염에 따라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되면서 서거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며 부패 척결 폭풍을 몰고왔다"라고 전했다.
신화통신 외에 봉황신문, 시나닷컴, 인민일보, 환구시보 등 중국의 주요 매체들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일본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요미우리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32년 만에 군부 정권을 민간정권으로 바꿨다"라고 전했다.
또, 아사히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진전에 공헌했고, 과거 정적과 손을 잡고 여당에 들어가 정권을 잡았다. 재임중 군 개혁, 하나회 척결, 부패 추방에 주력했지만 말기에는 외환위기를 겪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1994 년 7월 북한의 김일성 국가 주석과 첫 남북 정상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직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실현되지 않았다. 일본어가 유창하고 일본 인맥도 두터웠다. 하지만 재임 중 역사 인식과 영토 문제에서 일본을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한일 관계가 일시적 악화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