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진퇴양난(進退兩難)

[기자수첩]진퇴양난(進退兩難)

신용카드업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최대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가 절반 이상 깎였고 내년부터 수천억원에 달하는 카드 포인트 소멸 수익도 못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합치면 1조원 이상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

몇 개 카드사가 공공연히 매물로 나온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과거 카드대란 시기와 다를바 없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올 만하다.

벼랑 끝까지 몰린 카드사지만 이를 하소연할 수도 없다. 카드사를 향한 국민 정서가 나빠질 대로 나빠져서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정치권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정책이다. 하지만 그동안 영세 가맹점을 포함해 높은 수수료 수익을 카드사가 챙기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시장논리로 보면 카드사는 소비자에게 신용공여 등 편익을 제공하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이 행위가 카드사로 연결되면 소비자에게는 소비액 전체를 받아가는 착각이 들게 한다. 가계 부채를 양산하는 사익집단으로 카드사를 표적으로 삼는다.

국회 법안소위에 상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국민 권리를 주장하며 카드사를 옥죄는 다양한 법을 곧 입법화하겠다는 각오다. 5년간 6000억원이 넘는 소멸된 카드 포인트를 재단으로 귀속시키겠다는 것과 선불카드 낙전금액도 카드사에 못 주겠다는 의지다. 매출채권 사업에 다른 금융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도 포함됐다.

카드사는 손과 발을 다 자르고 식판에 차려진 음식까지 빼앗아가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좋지 않은 여론을 호도해 엄청난 부대 수익을 올리는 잘못된 조직으로 카드사를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카드사가 상당 부분 교묘한 편법으로 부대 수익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결제산업을 이끌어온 노력과 인프라, 그 성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한쪽이 잘못됐다는 일방적인 정책보다 시장 논리에 기반을 둔 공생 정책이 필요하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