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 키워드는 ‘중국’이었다. 중국 정부가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입 의지를 가시화했다. 세계 최초 10.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을 착공했다.
중국 복병은 대단했다. 거액을 쏟아 부었다. 칭화유니그룹, BOE 등이 순식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국내 기업은 애써 외면했다. “향후 5~7년 간 중국 기술이 위협적으로 발전하기는 힘들다”고 단정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BOE 10.5세대 투자 발표가 실행력이 없다며 불신했다.
오래가지 못했다.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선 BOE가 미국 코닝과 손잡고 10.5세대 설비에 투자했다. ‘차이나 공포’가 엄습했다.
정부와 국회는 천하태평이다. 살벌한 위기에도 정책 당국은 느긋하다.
내년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015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업계와 학계만 아우성이다. 대학 실험실은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다.
정부와 국회는 새해 예산이 줄어들었을 뿐이란다. 산업 경쟁력 상실을 운운하기에는 기우란다. 민간기업이 앞서 연구개발을 이끌고 있기에 정부가 나서서 민간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규제가 될 수 있단다.
핵심을 잘 들여다 보자. 발단은 국가 기간산업을 대기업 전략과 성과에만 의존하려는 정부의 고무줄 잣대에서 기인한다. 학생에게 연구비도 제대로 지급할 수 없고 실험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대로 갖출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무지가 문제다. 투자 없이, 대책 없이 업계 ‘열정’과 ‘노력’에 의지하려는 안일함이 문제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국내 설비 투자 기공식에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다.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앞에서는 격려하고 뒤에서는 예산 절반을 삭감한다.
중국 투자가 두렵다. 중국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게 중국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만 쓰라고 강요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 상황이 1년만 지속되면 세상이 바뀐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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