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PC와 스마트폰 등 IT 완성품 시장 성장률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반도체 시장 규모도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올해 전체 반도체 소자 시장 규모가 3363억9200만달러로 작년 대비 0.2%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상반기 전망치였던 3472억4800만달러(3.4% 성장)에서 크게 하향 조정된 것이다. 지난해 20% 가까이 시장 규모가 확대됐던 메모리 칩 분야 성장세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해 1% 역성장이 예상된다.
새해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PC는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스마트폰도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마이크로프로세서 같은 주요 반도체를 다루는 업체는 내년 경영목표를 원가절감으로 잡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은 본격 개화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센서, 아날로그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MCU) 같은 품목은 고성장이 예상된다. 반도체 기업이 최근 MCU와 센서를 탑재한 자체 개발보드를 내놓고 ‘플랫폼’ 단위 사업을 펼치는 이유는 이처럼 전통적 수요처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PC 판매량 최악, 스마트폰도 성장률 꺾여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PC 출하량이 작년보다 10.3% 줄어든 2억7670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13년 최악의 하락률(-9.1%)을 넘어서는 것이다. 내년 감소폭은 올해보다 덜하겠지만, 반등은 어렵다는 것이 IDC의 설명이다.
스마트폰도 성장률이 꺾였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올해 스마트폰 시장이 작년 대비 10% 중반 성장한 14억70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은 30~40% 성장률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PC 출하량 역성장, 스마트폰 성장 둔화는 메모리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하락을 부추긴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1월 말 주력 D램(DDR3 4Gb)과 낸드플래시(64Gb MLC) 가격은 각각 1.72달러, 2.15달러였다. 지난 1월 30일 가격 대비 D램은 49.1%, 낸드플래시는 21.5%나 값이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메모리 사업에서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회사 내부에선 ‘내년 실적이 꺾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메모리 업계는 가격 하락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원가절감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대표적 활동은 미세공정화다. 삼성전자는 20나노에 이어 18나노 D램을 개발 중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조만간 25나노 공정에서 20나노로 공정 전환 작업을 실시한다. 낸드플래시는 3D 제품 양산화와 함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솔루션 기반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보단 PC D램 가격 하락이 메모리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주력 D램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후발업체는 적자를 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IoT가 돌파구 “장기 성장 기반 만들자”
업계에는 자동차, 산업기기 등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IoT 시대가 열리면 반도체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있다. WSTS 같은 조사기관도 올해 센서, 아날로그는 견조한 성장세를 달성하고 내년 이후로도 시장 규모가 지속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텔,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대기업이 IoT 기기용 개발 보드를 내놓고 생태계 육성에 나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IoT 시장이 열리면 제대로 된 개발 생태계를 보유한 업체가 사업을 이끌어가기 유리하다. 칩 판매도 늘어난다. 인텔은 자사 초소형 x86 ‘쿼크’ 시스템온칩(SoC)이 탑재된 갈릴레오 보드를 보급하며 개발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도 ‘아틱’ 플랫폼을 내년 초부터 양산한다. 아틱은 삼성전자 MCU, 메모리, 커넥티비티칩 등이 탑재된 하드웨어 개발 보드다. 인텔과 마찬가지로 IoT 하드웨어 개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삼성전자 외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ST마이크로, NXP 등과 같은 해외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은 자사 개발자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 오랜 기간 투자를 지속해왔다”며 “앞으로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단품 판매가 아닌 플랫폼 단위 경쟁으로 구도가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2014~2017년 세계 반도체 소자 시장 매출액 전망치(자료 : WSTS)>
한주엽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