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환상의 빛’은 처음부터 끝까지 깜깜하다. 낮과 밤이 존재하기에 곧 햇빛이 들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이 영화는 한 낮에도 어둡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빛을 배제해 남겨진 자들이, 상실감으로부터 ‘빛’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환상의 빛’(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갑작스럽게 생을 떠난 남편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 분)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가는 유미코(에스미 마키코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린 시절 유미코는 할머니를 잃었다. 그는 그때 자신이 할머니를 붙잡았다면 조금은 더 오래 할머니와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어른이 된 유미코는 동네에서 같이 자란 이쿠오와 결혼을 한다. 3개월 된 어린 아들과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때쯤, 남편은 마치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렇게 죽음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미코의 삶에 들어와 버렸고, 그는 또 한 번 상실의 아픔에 내던져진다.
그래도 삶이란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른 뒤 유미코는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어도 그들이 빠져나간 공간은 메울 수 없는 일인 듯, 유미코는 허함을 느끼면서 사랑했던 사람들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유미코는 죽어버린 이들을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힘들다고 소리칠 수 있게 된다.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바깥으로 꺼내 보일 수 있을 때 유미코는 비로소 ‘상실’의 아픔을 딛고 ‘화창한 날씨’를 만나게 된다.
감독은 이런 시련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거친 파도 하나 없이 관객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든다. 까만 벽장이나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등의 소품을 한 신 한 신 카메라에 소중하게 담아냈고,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모습을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에 초점을 맞춘 후 뒤를 쫓지도 않고 가만히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본다. 특히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아주 긴 여운을 남기면서 관객들이 인물의 심리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게 만든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으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배두나가 주연을 맡은 ‘공기인형’, 지난해 개봉한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을 연출한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이다. 20년도 더 된 1995년 작으로, 그동안 특별전으로만 상영된 것에 이어 드디어 국내 정식 개봉했다. 오는 7월7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