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되면 찾아오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 기간이 짧아졌다.
과거 메모리 불황은 3년 이상 이어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 기간은 2년 미만으로 짧아졌다. 메모리 공급 업체 수가 줄고 미세공정 전환 주기가 길어지면서 공급 확대가 제한된 형태로 이뤄진 덕분이다. 이번 불황 때는 마이크론을 제외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꾸준히 이익을 냈다는 점도 특징이다.
◇메모리 불황 짧아지고 골도 얕아
D램 가격은 2014년 11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업계는 불황이 찾아왔다며 긴장했다. D램 가격은 지난 6월까지 계속 떨어지다가 멈췄다. 이후 반등세로 돌아섰다. 메모리 업체 실적도 개선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불황은 2년이 채 안 됐다”면서 “과거와 비교하면 기간이 상당히 짧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2009년 불황 때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포함한 모든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분기 적자에 허덕였다. 2011~2012년 불황 때는 SK하이닉스는 간간이, 마이크론은 집중돼 적자를 냈다. 2014년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어진 불황에는 오직 마이크론만이 분기 적자를 냈다. 불황 기간이 짧아짐은 물론 그 골도 얕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메모리, 공급자 시장돼 출렁거림 적어져
이유는 공급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업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 정도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만 공급한다.
제품 값이 떨어지면 가동률을 자율 조정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의미다. 과거 10개가 넘는 메모리 업체가 시장에 참여했을 때는 꿈도 못 꾼 일이다.
메모리 시장을 일부 몇 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는 지표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조사 업체 IHS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D램 시장의 허핀달허슈만지수(HHI)는 3000 안팎을 기록했다. HHI는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점유율을 제곱해서 합산한 수치로, 시장 경쟁도를 나타내는 지수로 활용된다. 1000~1800은 경쟁, 1800~4000은 과점, 4000 이상이면 독점 시장으로 본다.
1980년대 후반 D램 시장의 HHI 지수는 1000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생산 업체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체제로 재편된 이래 이 지수는 계속 오르고 있다. 과점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메모리 공급업체가 안정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급 증가도 제한
공급 증가 여력이 제한된 점은 장기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밝게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주요 D램 업체의 비트그로스(bit growth)는 수년째 20%대에 머물러 있다. 비트그로스는 비트 단위로 환산한 메모리 공급 증가량을 의미한다. 과거 이 수치는 50~70%를 오가기도 했다. 비트그로스가 50%를 넘으면 이듬해에는 어김없이 메모리 값이 떨어졌다.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D램 비트그로스가 수년째 20%대에서 머물러 있다는 점은 메모리 업체가 공급량 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수요 증가량에 맞춰 공급이 증가하기 때문에 급격한 수요 하락이 없는 이상 심각한 불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낸드플래시는 공급 경쟁 가능성 높아
공급량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은 미세 공정 전환이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D램은 하나의 트랜지스터에 하나의 커패시터로 구성되는 1T1C라는 구조의 한계로 인해 10나노대에선 미세 공정 전환이 상당히 어렵다. 투자비 역시 많다. 과거에는 5조~6조원으로 300㎜ 웨이퍼 투입 기준 15만장을 찍어 내는 생산라인을 지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 비용이 10조원 가까이 올라갔다. 이 탓에 D램 업체는 신규 공장을 건설하기보단 미세 공정 전환(기술 업그레이드)이나 보완 투자 쪽으로 투자 방향을 선회한 지 오래다. 실제 2010년 이후 건설된 신규 D램 공장은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 M14 정도다. M14는 신규 웨이퍼 투입이 아니라 기존 노후 공장(M10)의 생산 장비를 옮기는 것이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어려운 기술 개발, 천문학 규모의 투자비 지출 요인은 신규 업체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중국이 메모리 산업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D램이 아닌 낸드플래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는 3D 적층 기술이 상용화돼 용량당 가격을 낮추는 것이 D램보다 훨씬 수월해졌다”면서 “앞으로는 D램보단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투자나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