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서랜든은 오페라에서 당당하게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여주인공, 즉 메조 소프라노와 같은 음색을 가진 배우다. 메조 소프라노는 소프라노와 콘트랄로(알토) 사이의 음역으로 풍부한 음역을 자랑한다.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도 넓고 풍성하다. 마치 오페라 속 메조 소프라노처럼 그녀는 극중에서 때로는 순진한 표정으로, 때로는 방아쇠를 당기는 단호함으로 운명과 맞선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인 수잔 서랜든은 지난 1970년 영화 ‘죠’로 데뷔 이후, 수 십 편의 필모그래피를 거치며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발돋움해왔다.
수잔 서랜든의 다양한 필모그래피 중 대표적 작품을 메조 소프라노의 세 가지 음색과 비교해 살펴본다.
1. 록키 호러 픽쳐 쇼(1975) - 콜로라투라(mezzo soprano coloratura)
화려한 음색의 메조 소프라노.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현란한 장식음, 트릴을 구사한다.
‘록키 호러 픽쳐 쇼(1975)’에서 서랜든은 눈망울만큼이나 순진하지만 서서히 본능에 눈을 뜨는 ‘자넷’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 ‘이레이저헤드(1977)’ 등과 함께 컬트 영화의 교과서로 불린다. 영화는 청년 브래드와 약혼녀 자넷이 은사 스콧박사를 찾아가는 길에 폭우를 만나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외딴 성에서 겪게 되는 기상천외한 일을 그리고 있다.
2. 데드 맨 워킹 (1995) - 드라마티코(mezzo soprano drammatico)
고통, 절망, 분노 같은 폭넓은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무겁고 어두운 빛깔의 음색. 배역은 주로 어머니, 노파 등. 데드 맨 워킹에서 수잔 서랜든은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악인조차 사랑으로 품는 헬렌 수녀역을 맡아 그 해 오스카상을 받았다. 데이트 중인 남녀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매튜(숀 펜)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사형제도의 존폐 논란과 함께 흉악범죄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지 묵직한 울림을 준다.
3. 델마와 루이스(1991) - 리리코(mezzo soprano lirico)
음색이 감성적이고 매끄럽다. 흔히 ‘리릭 메조’라고 불린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서랜든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 역(바지역 : 여성이 남성 역할을 하는 배역)처럼 중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와 강렬한 연기로 극을 장악하며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했다. 제6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루이스역의 지나 데이비스와 나란히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특히 브래드 피트의 젊은 시절 모습과 그랜드 캐년의 광활한 풍경이 더해진 감각적인 미장센은 덤.
델마와 루이스는 새해 1월 12일 재개봉한다.
김인기기자 i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