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반도체' 백만기 신임 R&D전략기획단장은

'미스터 반도체'

백만기 신임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장이 1993년 얻은 별명이다. 당시 한국 D램 메모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미 간 반도체 통상 마찰이 심각해졌다. 1992년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 현대, 금성 등 한국 반도체 3사를 상대로 반덤핑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10월 예비판정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는 최대 80% 이상의 반덤핑 관세율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87.4%로 가장 높았다. 이것이 확정되면 국내 기업은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백 단장은 당시 상공부 반도체산업과장으로 '반덤핑 대책 협상 전담반'을 꾸렸다. 국가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난관을 돌파해야만 했다. 그는 바로 미국 워싱턴 D.C로 날아갔다. 과거 정보기기과장을 하면서 구축한 글로벌 주요 컴퓨터 회사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IBM, HP, 애플 등 대관 담당자(로비스트)를 일대일로 만나 설득했다.

백 단장의 당시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미국 컴퓨터 회사는 한국산 메모리를 저가로 구입하는 것이 이익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다. 1993년 3월 16일 미국 상무부는 현대전자, 금성일렉트론, 삼성전자 반덤핑 관세율을 각각 7.18%, 4.97%, 0.74%로 확정했다. 예비판정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 기사회생이었다. 백 단장이 당시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였다. 2000년 9월 미 상무부는 한국산 반도체에 반덤핑 관세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반덤핑 통상 분쟁은 일단락됐다.

일본은 한국 업계가 반덤핑 조치를 벗어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주한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정종 한 병을 들고 와 비법을 묻기도 했다. 일본은 1985년에 미국과 맺은 반도체 협정으로 발이 묶여 있었다. 이 틈을 한국 기업이 파고 들었다.

백 단장은 “2015년에 일본 NHK가 '일본 반도체, 왜 궤멸했나'를 주제로 특집 프로를 만들 때 나를 찾아와 이이제이 전략을 말해줬다”고 전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